일본인 친구 케이코
필리핀 로스바뇨스의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해 나누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IRRI에 오기 전에 나는 일본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일본에도 가본 적이 없다. 일본 음식을 줄곧 좋아해왔고,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좋아지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반일 감정을 갖고 자라났다.
IRRI에서 만나게 된 일본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턱이 없다. 때로 어떤 일본인들은, 묻지도 않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늘어놓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다카라는 일본인 연구원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일본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역사는 승리자들에 의해 날조되었고, 역사서에 기록된 일본의 만행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다. 그런 주장을 들으면, 온몸의 세포가 항의하듯 곤두서서 한국인으로서의 분노를 표출했다.
문화적으로는, 일본과 잘 맞는 편이었다. 다들 말하듯, 일본인들은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나와 맞았다. 눈치 없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는, 배려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도저히 친구는 될 수 없었지만, 친구가 되려는 마음을 버린다면, 일상생활에서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러다 일본의 대인배를 만났다.
인도의 일본 NGO에서 일하다, 인도인 크리스천 사미르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케이코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인 사미르와 함께, 로스 바뇨스의 UPLB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IRRI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극우 성향의 일본 정치인의 행보를 뉴스로 보며, 그녀는 그 정치인을 매우 비판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 일본의 만행에 대해, 한국인인 우리에게 사과했다.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부끄럽게 여겼다. 자기의 잘못도 아닌, 오래전 조상의 죄일 뿐인데도 통감하며 수치스러워했고, 미안해했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우리를 더 미안하게 했다. 결국 그녀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 줬다.
그녀의 사과로 인해 일본인은 모두 한통속이고 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 나라를 모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려는 희망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도 여러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개중에는 한국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일본인을 대하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케이코라는 일본인과 친구가 된 후,
진뱅크 전문가가 된 남편에게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와서 교육을 받는다. 그중에는 일본인 학생들도 있고, 한국인 학생들도 있다. 최대한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지만, 연구 이외의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애정어린 조언도 한국 학생들에게 더 하게 되고, 하다못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집에 초대하는 것도 한국 학생을 더 배려하게 된다. 그래도 일본 학생을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 혹시 그가 극우 성향을 가졌다 해도, 배척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케이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단 한명일뿐이라도, 일본인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통째로 바꾸게 해 주었다. 마치 적이었던 나라가, 친구가 된 것 처럼 느껴진다.
팬더믹이 끝나면, 인도에 있는 케이코와 사미르를 꼭 초대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가서 90세가 넘은 케이코의 할머니도 만나고 싶다. 케이코 한 사람으로 인해, 일본은 더 이상 싫은 나라가 아니다. 친구의 나라일 뿐이다. 생각의 전환을 도와준 대인배 케이코에게 감사한다. 그녀는 일본의 좋은 사람이다. 일본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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