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 이렇게만 하면 박XX만큼은 한다.
여전히 나는 우리 마을에서 영어를 제일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원어민이거나,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몇 년씩 살면서 공부한 사람이거나, 매일 영어로 논문을 쓰는 과학자들이다. 그러나 비교대상을 9년 전에 이 땅을 밟은 나 자신으로 한다면, 나의 실력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초급영어 청취’를 수강한 적이 있다. 이유는 돈 안 들이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고, 과목 이름에 ‘초급’이 붙었기 때문에 쉬워 보여서였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B마이너스를 받았다.
수업을 들어보니 전혀 초급이 아니었다. CNN 뉴스를 받아 적어야 했다. 그 과목 외에 다른 과목에서는 모두 A 이상이 나와서 교수님한테 메일을 보냈던 생각이 난다. 점수를 더 상향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해당 과목만 A 이상이 나온다면 부분적으로라도 장학금을 노려볼만했다. 당시 과외를 4개씩 하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여 학비를 벌어서 학교에 다니던 나로서는 정말 절실했다. 교수님은 물론 답장조차 없었다.
이후에도 고상하게 영어공부를 할 기회는 없이 필리핀에 오게 되었다. 최소한의 기회였다면, 직업을 가지고서도 계속했던 과외 알바를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온 것이 전부였달까. 갑자기 2012년 12월 18일에 필리핀에 오게 된 나는 외쿡 사람과 “Hello, How are you?”를 해본 경험도 없었다. 회화 실력은 zero였으며 동양 여자 특유의 부끄러움으로 외쿡인들을 보면 도망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청난 수다쟁이다. 거기다 한국 친구라고는 나를 왕따 시켰던 한인회 사람들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영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법이고 나발이고 발음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너무 심심해서 한 달 만에 되지도 않는 영어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인도인 크리스천 사미르는 감탄하며, 한국 학생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너처럼 하려면 적어도 열 달은 걸린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수다본능으로 9개월의 과정을 스킵해 버린 것이다.
연구소의 저명한 여성과학자였던 사라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되지도 않는 영어 문장을 말하면, 사라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부드럽게 올바른 문장으로 다시 고쳐 말해 주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게 자존심 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오지만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사라처럼 코넬 대학 박사과정까지 졸업한 영어 튜터를 고용한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녀는 정말 나의 은인이었다. 사라는 현재 미국으로 돌아가 출석하게 된 다국적의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한국 할머니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모였던 바이블 스터디 그룹도 큰 도움이었다. 같은 성경본문을 보고 다국적의 사람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열심히 토론했는데 듣고만 있어도 실력이 성장했다. 우리 그룹엔 당시 이곳을 방문하고 있던 학생들이 많았는데, 모두 다른 일반 학생들에 비해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돌아갔다.
초창기에 했던 노력은 좋아하는 미드를 다운로드한 뒤, 영어와 한국어 자막을 모두 켜고 관람했던 것이다. 이것을 하려면 문장을 빨리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속독하듯 한 번에 반 문장씩은 눈에 들여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영어 표현과 그에 따른 한국어 해석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뭣보다 재밌다. 그때 섭렵했던 미드 중엔 ‘하우스’와 ‘몽크’가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 필리핀에서 명문대에 속하는 UPLB의 랭귀지 코스에서 그동안의 실력을 점검한 바 있다. 석, 박사 과정에 있는 아시아권 15개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나는 그중에서 1등을 했다. 그 이유는 편입한 경력이 있어 토플에 익숙했고, 한국식의 발음이 다른 나라들의 발음들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식이나 태국식, 일본식의 발음은 그들이 아무리 영어 실력이 뛰어나도 알아듣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국식의 발음은 그중에 제일 낫다. 그래서 교정을 덜 받았고 점수도 좋았던 것 같다.
지금도 발음에는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다시 말해, 기준을 낮게 잡았다. 나의 기준은, 상대방이 알아듣기만 한다면 오케이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에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의 연설을 화자를 알려주지 않은 채로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들려준 실험에서, 한국인들은 내용보다 발음에만 집중해 그의 실력을 폄하했다. 반면 외국인들은 발음에 집중하지 않고 내용에 집중하여 정말 영어 잘한다, 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달된다고 극찬을 했다. 원어민이 아닌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발음을 완벽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를 내 아이가 영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보며 알았다. 한국어를 미리 배우고 영어를 발음기호대로 나중에 습득한 나는, 머릿속에 정형화된 한국식으로 바꾼 영어의 발음 체계를 갖게 되었다. 반면 아이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영어 발음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나에게는 이미 ‘틀’이 있다면, 그에겐 아직 머릿속에 정형화된 발음 체계가 없다. 어떤 발음이든 정확하고 유려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덧붙인다. 우리 한국인의 조건에서 영어 발음을 더 잘하고 싶다면, 문장과 발음의 강세와 억양(stress and intonation)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강세와 억양이 한국어에선 약한 편이기 때문에 신경을 덜 쓰기 마련인데, 영어를 말할 때 이 부분에서 틀리면 원어민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단어마다 원어민들이 강세를 어디에 두는지, 문장에 따른 억양을 어떻게 쓰는지를 체크하면 유리하다.
아직 갈길이 멀다. 앞으로의 목표는,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며 알맞은 언어로 외국인 친구들의 말에 공감과 친절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지식과 은혜를 더 효과적으로 영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화와 문화, 언어와 언어 사이 벽이 있을지라도 공감과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수많은 친구들을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