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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Apr 28. 2024

아버지의 의자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월 28일. (일)

아버지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은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끝났다.

비록 항암치료는 결국 받지 못했지만 의료대란과는 한발 떨어져 있던 전문의 위주로 운영되는 2차 병원을 선택해 신속한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료를 향한 희망을 가졌던 2주. 그리고 암 4기가 뜻하는 ‘불치병’이라는 대전제를 받아들이고 호스피스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2주가 걸렸다.

아. 그 많은 검사를 위해 한 채혈. 어머니는 농담처럼 “수혈을 해놓고 피를 그렇게 많이 뽑아가냐.”라고 했었다.

혈소판 수혈은 이제 호스피스로 가면 하지 않을 것이고 혈액투석과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도 없다.


아침에 퇴원수속을 하고 병동에서 퇴원약과 복약지도서와 함께 퇴원안내를 받았다.

입원할 때 입었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휠체어에 앉으신 아버지는 오랜만에 눈을 활짝 드셨다.


이번에 입원해서 2주 가까이 있었지만 병실에만 계셨던 거와 마찬가지라 병원을 떠나는 날 병원 한 곳에 이 병원의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작은 한옥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좀 좋아져 보이는데 고무됐을까. 어디 가서 맛난 것을 먹게 해 드리려고 들른 식당에서는 주차장에 내려 걷는 것부터 밥을 먹는 것까지 모두 예전처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저녁에 온 가족이 모였다.

아이들과 며느리들을 반겨주시고 잠시 거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계셨다.

3년 전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샀던 이케아 포엥 암체어인데 다시 분가를 하면서 본가로 온 물건이다.

비싼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이 의자를 좋아하고 늘 거기 앉아 계셨다. 소파가 어머니의 차지여서 그랬을까.


아마도 내일 집을 나서면 다시 돌아오실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의사가 얼마 안 남았다 했다고 저렇게 생을 포기하는 게 맞냐고 할지 모르겠다. 항암이 안된다고 민간요법이든 무슨 방법이든 해보지도 않고 호스피스를 들어가느냐고 가족들이 너무 의지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 슬퍼하지도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매일을 두려움보다는 서로를 보살피며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다시 침대에 누우시고 거실에 의자는 또 비어있다.

의자에 앉아본다.

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온기가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인생에 있었던 뜨거움의 흔적이리라.


이제 그 뜨거운 열정을 물려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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