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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Aug 02. 2023

설계는 누구의 일인가

업(業)에 대한 생각

요즘 무량판 구조의 전단보강근 누락에 관한 뉴스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설계, 감리 그리고 시공 및 발주에 관해 책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그리고, 대한건축사협회와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해묵은 책임논쟁에 대해서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건축학과에서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데 일반의 사람들로서는 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건축, 엔지니어링산업 그리고 모든 제조업을 위해서는 "설계"라고 하는 업무가 선행되어야 한다.

건축에서 말하는 설계란 무엇인가.


건축법에 그 정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건축법 제2조(정의)를 찾아봤으나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설계"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설계를 하는 국가공인 건축가인 건축사는 그 업에 대한 권한을 어디로부터 부여받게 되는가.



건축법 제23조 건축물의 설계

① 제11조제1항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거나 제14조제1항에 따라 건축신고를 하여야 하는 건축물 또는 「주택법」 제66조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른 리모델링을 하는 건축물의 건축등을 위한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건축법 제23조의 조항이 건축물의 건축등을 위한 설계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범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철근 누락, 붕괴 등 건축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구조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축사에게 설계의 모든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고, 위의 건축법 제23조의 개정에 대한 요구가 관계된 분야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법 제23조에서도 설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설계에 대한 정의는 의외로 다른 법에 있는데, 건축사 예비시험이 폐지된 지금.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기 전에는 시험에서 조차 볼일이 없는 건축사법에서 설계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건축사법 제2조 정의

3. “설계”란 자기 책임 아래(보조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를 포함한다) 건축물의 건축, 대수선(大修繕), 용도변경, 리모델링, 건축설비의 설치 또는 공작물(工作物)의 축조(築造)를 위한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

가. 건축물, 건축설비, 공작물 및 공간환경을 조사하고 건축 등을 기획하는 행위

나. 도면, 구조계획서, 공사 설계설명서,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공사에 필요한 서류[이하 “설계도서”(設計圖書)라 한다]를 작성하는 행위

다.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를 해설ㆍ조언하는 행위



건축물의 건축 등을 위한 설계에는 위의 "가, 나, 다"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고 이것은 건축사의 "책임" 아래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건축은 건축사, 구조는 구조기술사, 전기는 전기기술사, 기계는 기계기술사 각자가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가 이 행위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설계"라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건축사가 구조, 전기, 기계, 토목, 소방 등의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설계를 건축사만이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축법 제23조는 업역에 대한 배타적인 제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 이래로 건축가가 수행해 온 종합적인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사는 "책임"을 질 경우 건축설계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독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건축법 시행령 제91조의 3은 다음과 같이 건축물의 설계자(건축사)가 설계과정에서 협력을 해야 하는 관계전문기술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 시행령 제91조의 3 관계전문기술자와의 협력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건축물의 설계자는 제32조 제1항에 따라 해당 건축물에 대한 구조의 안전을 확인하는 경우에는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1. 6층 이상인 건축물

2. 특수구조 건축물

3. 다중이용 건축물

4. 준다중이용 건축물

5. 3층 이상의 필로티형식 건축물

6. 제32조 제2항 제6호에 해당하는 건축물 중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건축물

② 연면적 1만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창고시설은 제외한다) 또는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건축물로서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에 건축설비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1. 전기, 승강기(전기 분야만 해당한다) 및 피뢰침: 「기술사법」에 따라 등록한 건축전기설비기술사 또는 발송배전기술사

2. 급수ㆍ배수(配水)ㆍ배수(排水)ㆍ환기ㆍ난방ㆍ소화ㆍ배연ㆍ오물처리 설비 및 승강기(기계 분야만 해당한다): 「기술사법」에 따라 등록한 건축기계설비기술사 또는 공조냉동기계기술사

3. 가스설비: 「기술사법」에 따라 등록한 건축기계설비기술사, 공조냉동기계기술사 또는 가스기술사

③ 깊이 10미터 이상의 토지 굴착공사 또는 높이 5미터 이상의 옹벽 등의 공사를 수반하는 건축물의 설계자 및 공사감리자는 토지 굴착 등에 관하여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기술사법」에 따라 등록한 토목 분야 기술사 또는 국토개발 분야의 지질 및 기반 기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이하생략-



그렇기 때문에 건축사를 제외한 전문분야의 기술자가 설계에서 배제된다는 근거로 건축법 제23조를 드는 것은 설계에 관한 우리나라 건축 관계법령의 취지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봐. 건축사가 아니면 설계를 하지 못한다잖아." 라거나 "전문지식이 부족한데 건축사만 설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안된다." 같은 주장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사는 자신이 수임한 건축물의 설계업무를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수행할 수 없고, 법에서 규정하는 분야가 아니라 하더라도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 종합적 조정자의 역할이라는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축사는 다른 분야에 대해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것이며(물론 각 분야별로 설계기준, 법령 등을 준수해야 하고 자신이 수행한 설계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다.), 설계와 관련된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격의 무게는 이 책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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