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에 대한 생각
“거기 00 설계사무소지요?”
“네. 00 건축사사무소입니다.”
다짜고짜
“아니. 도면이 맞는 게 하나도 없고... (주절주절)“
“어디신데요?”
“아. 여기 XX건설 하도급받은 어디 어디인데요. “
“근데 거기서 저희한테 왜 전화하셔서 도면이 맞니 틀렸니 하시는 거죠? XX건설하고 얘기를 먼저 하셔야죠.”
“설계사무소에 전화해 보라던데... 구시렁구시렁...”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유독 이판에는 예의나 절차 따위는 없고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러고 보니 설계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그전에 군대에서 공사감독관을 하던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건설회사가 공사를 맡기 위해서는 보통 입찰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 입찰을 하기 위해서는 그냥 도면과 시방서등의 설계도서만 받고 시공자 나름대로 도서를 해석해서 이 설계대로 공사를 하기 위해서 얼마 정도의 금액이 들어가는지를 견적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급공사 이거나 조금 규모가 되는 현장이거나 기업이 발주를 내는 때는 설계사가 작성한 물량만 기재된 내역서에 시공자가 본 공사를 수행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재료의 단가와 노무비등을 넣어 입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물량내역서가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당연히 이 절차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설계도면에 모든 자재와 구법에 대한 정보가 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산사무소에서는 최대한 도면을 해석해서 내역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설계사무소와 견적사무소의 검수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아이템의 누락, 물량의 오류 등은 그대로 시공회사에 전달되어 수정되지 않은 채로 계약내역서로 변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확률로 따지자면 한 100% 되려나.
설계자는 시공회사가 결정되고 현장이 개설되고 나면 간간이 오는 검토요청에 응대하거나, 해당공사의 감리자가 아닌 경우에는 ‘설계자의 의도 구현 용역’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볼모가 되어 끌려다니게 된다.
사실 설계는 공사를 위한 설계도서를 납품하고 나면 그 업무가 종료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완벽한 설계도서란 있을 수 없고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이 도면을 실제 건물로 만드는 데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견해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어쩌면 더 좋은 방안이 있기도 하는 것이니 납품을 하고 업무가 완료되었으니 “나는 모르겠소”라고 발뺌만 하는 것도 사실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간공사에서는 설계 계약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 ‘준공불 10%’이라는 조항이 붙기 마련이고 작게는 몇백에서 크게는 몇 천씩을 남겨 놔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준공불(竣工拂)이라는 것. 원래 건설에 있는 용어이다. 건설은 통상 월 기성을 받기 때문에 공사가 끝나고 정산까지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법적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몇 년씩 걸리지는 않는다.
당연히 일이 끝나는 시점에 마지막 받을 돈에서 얼마나 일을 더했고 덜했고를 따져 증액을 하든 감액을 하든 정산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왜 설계비에까지 준공불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됐는가.
결국 설계자를 못 믿기 때문이고, 자문과 변경, 그리고 사용승인에 대한 절차와 비용을 설계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폐단일 뿐이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상호 간의 불신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건축주는 설계업무가 종료되면 정당한 설계비를 지급하고 자신 있게 설계자에게 그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설계자는 설계비를 정당하게 지급받은 설계업무에 대한 결과에 자신 있게 책임을 지면 될 것을 10% 안 남겨두면 마무리를 잘 안 해줄 것이라는 건축주와 애초에 적은 설계비를 받고 과중한 업무를 했으니 납품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개입하고 싶지 않고 싶은 설계자의 이해가 충돌하는 것이다.
설계비와 공사비.
공공입찰에서는 최저가 입찰이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비상식적으로 낮게 금액을 제시해 낙찰하한선 아래로 투찰 하면 아예 제외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일 낮은 금액을 써서 내는 사람이 일을 가져가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일정 수준 이하의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는 발주자가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금액으로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근거를 제시하시오.”
무슨 기술이 있는지 아니면 무슨 부실이 있는지 밝히지 못하면 오히려 제일 낮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은 입찰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설계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설계비 견적서를 휘둘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설계비를 아끼면 공사비가 늘어나게 된다.
낙찰을 위해 예쁜 말만 골라서 하고 제살을 깎아 낮은 공사비를 제시하던 건설회사는 시공자가 선정되는 그날부터 설계변경 대상을 찾아 실정보고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다.
설계자도 자신의 실수와 오류가 드러나는 설계변경이 좋을 리가 없다.
단면 한번 더 끊어봤다면 찾아낼 수 도 있었던, 시간에 쫓겨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그런 문제들이 생긴다.
시간과 인력. 누구나 말하기 좋아하는 Man Hour는 곧 돈이고 설계자가 적게 받은 설계비가 그 빈자리를 만든다.
당연히 시공자도 이런 도면을 받아 들고서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감리자가 상세시공도면을 그려서 승인을 받고 공사를 하라고 해도 잘 안된다. 그런데 도면이 엉망이라는 얘기만 계속하다 보면 시공자도 건축주의 신뢰를 잃게 된다.
건물이 무슨 설명서에 있는 그림대로 여기에 이 부품을 붙이라는 간단한 지시만 따르면 되는 프라모델 만드는 것도 아니고 도면이 없어서 공사를 못한다는 게 결과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변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이 문제도 시공자의 저가투찰이 큰 몫을 한다.
설계오류가 시공자의 책임도 아니고, 시공자의 저가 투찰이 설계자의 책임도 아니다.
갑자기 설계비를 지금의 2배 3배로 받아야 된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다만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설계자에게 전가시키는 지금의 건축 과정은 언제까지나 같은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건축관계자 서로가 믿지 못하는 이런 현실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계속 지불할 수밖에 없다.
건축에서 무너진 신뢰에 관한 이야기를 앞으로 좀 더 풀어나갈까 한다.
또 한 학기 건축학전공 5학년들에게 ‘건축실무’를 강의해야 하는 입장에서 좀 냉정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