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과 세대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같은 세상에 살아도, 다른 세계를 산다

by 디파트디렉터 Aiden

우리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또 다른 분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 되곤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세대, 집단, 그리고 살아온 경험의 맥락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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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은 사회가 기대하는 행동의 틀이며, ‘상식’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믿는 공통된 이해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라온 시대와 문화, 그리고 소속된 공동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형성되고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세대나 조직 문화에서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소속감과 협업의 출발점이 됩니다. 상사는 식사를 함께하며 팀의 분위기를 살피고, 후배는 그 자리를 통해 암묵적인 규칙을 배워나갑니다. 그러나 다른 세대에게는 식사 시간은 철저히 개인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시간이며, 업무 외의 영역은 가능한 분리하고자 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식사'라는 행위조차, 누군가에게는 관계의 상징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립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만든 집단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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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국가나 문화권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보다도,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환경에 사는 세대 간 갈등이 더 깊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같은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전제를 무심코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 같은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시대의 상식과 규범 안에서 성장해온 이들입니다. 그런데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왜 저렇게까지 예민하지?’, ‘그 정도는 눈치껏 알 텐데’라는 판단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제품, 서비스, 콘텐츠가 자신과 다른 세대 혹은 문화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내 기준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들이 어떤 상식 안에서 사고하고, 어떤 문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어떤 맥락에서 공감하고 지갑을 여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도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만든 서비스조차도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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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획이든, 마케팅이든, 디자인이든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하나입니다.
바로 ‘내가 아닌,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진짜 소통은 말을 잘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나에게 익숙한 규범과 상식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설득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해는 결국 존중의 다른 이름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 그 다름을 배려하고 수용하려는 자세에서 비로소 ‘진심’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우리가 원하는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되어줍니다.


<디파트(De;part),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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