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예술의 존재이유
이미지와 논리
디자인과 예술 –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디자인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예술은 논리와 설득의 싸움
먼저 순수예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흔히 예술은 감성과 자유로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계는 보이지 않는 논리와 설득의 전쟁터입니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비평가들과의 치열한 논리싸움을 통해 증명해야 하죠.
작품을 비평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논리가 더 설득력 있는지를 두고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인지 라캉이나 장 보드리야르 같은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과학자들의 논문까지 예술의 논리적 토대를 쌓아가는 데 쓰입니다. 예술은 생각보다 명확해야 하고, 강력한 논리로 무장해야만 인정받는 곳입니다.
대학의 교수법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공격받고 방어해야 하며, 작가의 논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됩니다. 그래서인지 "연예인의 취미로 시작된 작가 활동"을 불편하게 여기는 작가들이 있죠.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에 불만은 없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전시장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갖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디자인은 명확함이 핵심이다
이제 디자인으로 넘어와 봅시다. 디자인은 예술과 다릅니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명확한 목적을 가진 이미지 제작"입니다. 디자인은 설득할 대상과 목적이 비교적 뚜렷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예술처럼 관념적이거나 철학적인 싸움을 펼치기보다는,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부분을 간과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사이트(insight)와 감성에만 의존해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걸 지켜보는 예술가 출신의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
문제는 디자인이 마냥 감성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됩니다. 디자인 작업을 두고 "이건 내 감성이야, 판단할 수 없어!"라며 주관적인 논리만 내세우는 경우가 있죠. 이런 태도는 실제 예술의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공격당하기 쉽습니다. 예술계에서는 감성만으로 버티기 어렵습니다. 작품이 무언가를 말하려면 탄탄한 논리와 설득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디자인에서는 그런 감성적 판단이 종종 용인됩니다. "주관이니까!"라고 방어하는 상황을 보며, 가끔은 정말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예술계에서 논리와 토론 속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이런 모습이 환장할 노릇입니다. 디자인은 단순한 감성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확한 목적을 가진 도구이자,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예술과 디자인의 다른 출발점
예술과 디자인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예술은 작가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에서 출발하지만, 디자인은 타인의 목적과 문제 해결에서 출발합니다. 예술은 논리와 감성이 충돌하며 고민의 과정이 드러나는 작업이라면, 디자인은 그 고민이 이미 정리되어 명확하게 전달되는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감성이 아니라 목적의 설득력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고, 그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디자인입니다.
예술을 넘보는 디자인?
디자인이 예술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은 분명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예술가처럼 "내 감성을 이해하라"고만 외친다면, 디자인은 그 본질을 잃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자, 설득의 결과물입니다. 예술과 디자인은 각자의 영역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서로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명확해야 합니다. 목적을 잊지 말고, 논리와 설득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성은 그 과정에서 한스푼 자연스럽게 더해져야 합니다.
디자인이 명료함을 잃는 순간, 그것은 애매한 예술이 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