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생각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우리가 그간 믿고 있던 가치관들을 뒤 흔들어 버리기도 하고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작게든 크게든 코로나가 드리운 검은 그림자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버렸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는 혼돈의 아수라장에서 길 잃은 어린 양처럼 헤매이고 있다.
그야말로 멘.붕.
나 또한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나의 일에서
보이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인해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었고
그것이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유형과 무형에 관계없이
코로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내 삶 속에서 서서히 그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잘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자아성찰의 기회도 갖게되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도 하나 둘 씩 해보고자 하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럴 때는 나의 [생각은 짧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빛을 발한다.
'걱정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거면 긍정적이게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템포 쉬고가자.'
사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타인의 걱정이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가장 타격을 입고 있는 업계 중 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자극적이고 하드코어한 뉴스 기사를 시시각각 접하는 지인이나 가족들의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나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스타일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국에 걱정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어쩌면 그런 걱정은 너무 고마운 일인데 행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상황은 걱정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하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어떨 때는 걱정어린 말보다도 그냥 따뜻한 묵언의 응원과 위로가 힘이 될 때가 있고..
정말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사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텔레파시처럼 그 마음이 느껴진다고 믿기 때문에.
누군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낸다면 그 때 손을 잡아주어도, 귀 기울여 주어도 충분하다.
얼마 전 카톡으로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가을의 절정에서 단풍으로 수 놓아진 모교의 풍경 사진.
나는 내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그 사진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지인 중 한명이기에
그날 밤, 나는 어떤 걱정과 안부의 말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
'이렇게 예쁜 가을 단풍도
겨울 찬 바람에 자기를 잠시 내어주고 또 다시 때를 기다리듯이 (힘내)'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