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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Jan 12. 2021

03.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았다

투기와 투자 사이- 안정추구형 인간의 주식 체험기 

'거침없는 코스피.. 장중 3200선 돌파'

요즘 TV를 돌리다 보면 동학개미라느니 십만전자라느니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아직도 거침없이 오른다느니 돈에 관련된 달콤한 뉴스가 우리를 투자의 세계로 손짓한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는 꽁꽁 얼어붙고 물가는 요동치며 취업률은 사상 최저라는데 이상하게도 주식을 선두로 한 여러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띠는 것 같다. 목돈을 은행에 예적금을 넣어두는 것은 재테크에 관심이 없거나 포기한 사람들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내 등 뒤에서 몰래 수군댈 것 같은 분위기다.


사실 나는 무모한 도전이나 인생은 한방이라는 가치관을 누구보다 경계하며 안정과 균형을 중시하는 소시민 중의 소시민의 표본이다. 그런 내가 어찌 보면 '공격투자의 대표주자'하고 할 수 있는 주식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더라도 요즘 주식시장이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들어와 있고 과열되어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지인이나 친구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다 보면 주식이 항상 메인 안줏거리가 되어버리고 누가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이 회사는 저평가되어 곧 오를 거니까 미리미리 사두라는 둥 재테크 고수들이 내 주위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니 뭐야, 다들 알게 모르게 재테크의 고수들이었구나.'

하지만 재밌게도 투자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나를 빼고 모두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만 같아 배신감마저 들려던 참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의 이성 깊숙한 곳에 숨어 눈치를 보고 있던 공격투자 성향이 꿈틀거렸다. 왠지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주 위험한 생각을 겨우 잠재우며 내 나름의 기준을 세워 손절과 익절의 한도를 정했고 그렇게 자유 시장 경제에 나를 던져 시험해 보기로 했다. 투자인지 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앉은자리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내 돈은 오르고 내리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한다. 내 손에 만져지지 않는 허상의 숫자들은 빨강과 파랑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네모난 휴대전화 액정을 바라보는 나 또한 희열과 절망을 오고 간다. 어찌 색깔도 그렇게 잘 정했는지.. 희열의 뜨거운 빨강과 절망의 차가운 파랑.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특권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주식에 접할 수 있는 덕분에 그때만큼은 마치 전문 투자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공격투자형인 척 어울리지 않은 가면을 쓸 때마다 나도 몰랐던 돈에 대한 내재된 욕심과 욕망이 나타나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나의 눈과 귀를 닫아버렸고 이름 모를 두려움도 찾아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에 계속해서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고 미래를 내다보는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가에 팔 타이밍을 판단하겠다는 무모하고 건방진 생각들이 나의 이성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냉철한 숫자는 나의 그런 기대와 두려움을 비웃는 마냥 개의치 않고 계속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전문가가 말하는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미라면 경계할 감정들이었나 보다. 투자가 투기로 변할 수도 있는 건강하지 못한 투자 마인드 같은 것?


아무래도 투자성향이 안정형 추구라고 해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나 또한 과거 몇 번의 주식투자로 운 좋게 수익을 얻은 경험이 있었다. 또한 친한 은행원의 권유로 연말정산 혜택을 위해 별생각 없이 납입했던 펀드가 요즘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자산 형성에 크나 큰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보니 투자가 주는 달콤함을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 희열감이 지나쳤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수익에 감사하기는커녕 더 수익을 내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며 잘못된 투자성향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수익이 날 때마다 '내가 진짜 이 돈을 번 것이 맞나?' 하는 찝찝한 기분과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약간은 허무한 결론에 벗어날 수 없었다. 너무나 순진한 건지 순수한 건지 왠지 내 돈이 아닌 것 같은 기분. 월급은 액수와는 별개로 나의 육체 및 감정노동의 총제적인 대가로 얻었다는 뿌듯한 감정이 더 컸지만 주식으로 얻은 수익은 내게는 그다지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무감정의 허상과 상상의 돈처럼 매력 없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High Risk, High Return을 외치며 큰 수익을 위해서는 깡은 필요한 거라고. 혹여나 주식은 떨어져도 버티면 되는 것이라고. 주식은 파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주식으로 큰 수익을 거두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클릭 몇 번으로 불로소득을 얻은 것이 아닌 그가 정글과도 같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버틴 시간과 멘탈 관리에 대한 대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여윳돈이라 하더라도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담대함의 대가 같은 것? 물론 누군가가 앉은자리에서 몇 년 치 월급을 한 번에 벌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솔직히 나도 사람이기에 부러운 감정이 먼저 들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노동자기에 그렇게 쉽게 돈이 생긴다는 사실에 불편한 감정이 당연히 들기도 한다. 하지만 뭐? 매수와 매도를 결심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경험에서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 정도 깜냥이 아니었는걸 누굴 탓하나.


솔직히 이런 어려운 경제상황일수록 주식이 아니더라도 재테크와 경제상황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세상의 판도 중에서도 재테크라는 테두리 밖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모아 돈의 가치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아주 긍정적인 반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자성향이나 경제적 상황, 재테크 수단에 대한 평가에 따라  개인마다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진 만큼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거나 일편 일률적으로 어떤 재테크가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주식을 하기만 하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오도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의 주의와 경계필요하다. 마치 요즘 주식 그래프를 보면 가장 짜릿한 순간을 위해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고 있는  같은 섬뜩한 기분이 문득문득 들기도 한다. 물론 변동하는 이런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누가 맞고 틀리고는 미래를 예측할  있는 신의 영역이기에 앞으로 주식시장이 어떤 상황으로 흘러갈지는 두고  일이다.


가지고 있던 주식들이 어제 최고가를 찍고 오늘은  많이 떨어졌다. 어제가 가장 수익률이 좋았을 매도 시기였는데 신처럼 예측하지 못한 것을 나도 모르게 후회하게 만든 오늘의 주식시장에 서 있는 내 자신이 싫었고,  오를지도 모르는  High Risk 모험을 걸지 못해 High Return 하지 못하게 됨을 푸념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팔아야  돈이라는데 그냥 전자 화폐 같은  가짜 돈이 점점 지겨워졌다. 나중에 돼서 지금  ,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욕심이었다. 내가 정해놓은 수익구간에 이미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욕심의 꼬리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지금의 수익에 감사하며 만족하고 ‘탈출하고 싶었다. 다시 다운 평온함을 되찾고 싶었다. 티끌모아 티끌이라고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도 경험했기 때문에 단순히 주식장의 흐름과 운으로 얻어진 가벼운 돈이 아닌 조금씩이라도 묵직하고 단단하게 쌓여가는 돈에 조금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졌다고 할까.


[체결 통보]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일단은 돈을 잃을 걱정도 주식시장의 상황을 지켜볼 필요도 없는 지금이 나는 좋다. 주식을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한다 혹은 옳다 그르다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단지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서 빵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의 지금이 너무 좋다.

투기가 아닌 건강한 투자를 위한 공부도 더 해보고 싶어 졌고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균형 있는 나의 자산형성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다.

 

일단 당분간은 개미보단 게으름 피우는 베짱이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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