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_ 가능성과 도전
박사논문 주제였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통한 장소 만들기를 연구해 오면서, 인공지능(AI)이 앞으로 공간과 장소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관점에서, AI가 장소 경험과 디자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도시를 걷다 보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똑똑한 공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버스 도착 시간뿐 아니라, 주변 날씨와 미세먼지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알려줍니다.
카페에 들어가면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이름이 호명되면 음료를 찾아가는 경험도 이제 일상이 되었죠.
또한 국내외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에는 방문객들이 목적지를 쉽게 찾도록 돕는 길 안내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실 롯데백화점 등에서는 현위치 기준 동선 안내, 실시간 이벤트 정보, 층별 편의시설 안내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종합정보안내 키오스크가 운영 중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터치스크린을 통해 매장 위치와 동선을 안내하고, QR코드 연동으로 스마트폰에서도 길 안내를 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인천 중앙공원, 삼척시 장미공원 등 국내 여러 도시의 공원과 산책로에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스마트 벤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벤치는 단순히 쉬는 공간을 넘어,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기로 스마트폰을 USB 또는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일부 제품은 와이파이(Wi-Fi), 공기질 센서, LED 조명 등 다양한 스마트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시민들의 편의를 크게 높이고 있습니다.
요즘 일상 속에서 만나는 변화의 이면에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앞으로 AI가 만들어낼 변화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공간 디자인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건축가나 도시 계획가들은 이미 생성형 AI(Generative AI, 창의적 결과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공지능)를 활용해 수많은 디자인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중에서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창의적인 판단과 감성적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미 2018년, Matejka 외의 연구는 AI를 활용한 생성적 디자인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이 연구에서 AI 기반 생성적 디자인 시스템은 사용자가 정의한 목표와 제약조건을 바탕으로 수백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다양한 설계 대안을 자동으로 생성합니다. 디자이너나 건축가는 이렇게 생성된 대안들을 구조적 성능(예: 강도, 무게)과 미적 요소(예: 형태, 색상) 등 여러 기준에 따라 탐색하고, 비교·선택·수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러한 협업적 디자인 프로세스는 AI가 대규모 설계 공간을 신속하게 탐색하고, 인간이 맥락적 판단과 창의적 선택을 담당함으로써, 기존의 설계 방식보다 훨씬 폭넓고 혁신적인 설계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6,800개의 설계안 데이터셋과 사용자 연구를 통해, 이 방법론이 혁신적이고 최적화된 설계 솔루션을 도출하는 데 효과적임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또한 Dream Lens라는 도구는 인터랙티브 시각화(Interactive Visualization)와 다차원 필터링(Multidimensional Filtering)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방대한 설계 대안 중에서 자신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쉽고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AI는 공간을 단순히 ‘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과 선호에 따라 변화하는 ‘반응형 환경’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 조건에 최적화되는 건물, 사람들의 사용 패턴을 학습해 더 편리해지는 공공 시설 등이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이 이미 우리의 기분과 일정에 맞춰 조명과 온도를 조절해놓았을 수 있습니다. 출근길에는 교통 상황과 날씨, 개인의 평소 선호도를 고려한 경로를 제안받을 수 있겠죠. 사무실에 도착하면 공간이 당신의 작업 스타일에 맞게 조정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형 환경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공간은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AI는 다양한 사용자들의 필요와 선호를 인식하고, 이를 공간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각기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동시에 배려하는 공공 공간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AI는 사람들의 기분과 스트레스 수준을 감지하고, 이에 맞춰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조명을 조절하거나, 공공 공간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환경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AI는 에너지 사용량, 자원 소비, 폐기물 발생 등을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함으로써, 환경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는 스마트 빌딩, 물 사용량을 최적화하는 조경 시스템 등이 널리 보급될 수 있습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달 방식)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AI와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기술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와 결합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더욱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도시에서는, 단지 거리를 걷는 일조차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될지도 모릅니다.
AR 기기를 착용한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건물의 역사와 이야기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확인하고, 디지털 내비게이션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을 탐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서는 주문 전에 간단한 제스처만으로도 요리의 모든 면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도심 속 공원에서는 현실 공간에 겹쳐진 AR 예술 작품이나 가상 전시를 통해,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일상 속 감동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요?
장소는 이제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닙니다.
정보와 감각, 경험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무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설계하고, 어떤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미래의 공간 디자인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I가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와 함께, 몇 가지 중요한 질문도 남습니다.
첫째, 우리는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효율성과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공간이 과연 우리의 정서적,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자연의 불규칙함이 주는 아름다움,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둘째,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을까?
AI 기반 공간 혁신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기술 접근성, 디지털 리터러시, 경제적 불평등 등은 새로운 형태의 공간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셋째,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AI 기반 공간은 사용자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끊임없이 모니터링되는 환경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공간 디자인은 기술의 진보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술적 가능성과 인간적 가치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는 기술 개발자, 디자이너, 정책 입안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소리와 참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AI 기반의 공간 설계가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 그리고 공동체적 유대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AI와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공간 —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지속가능하고, 더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Reference_
Matejka, J., Glueck, M., Bradner, E., Hashemi, A., Grossman, T., & Fitzmaurice, G. (2018). Dream lens: Exploration and visualization of large-scale generative design datasets. In Proceedings of the 2018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aper 369, pp. 1-12).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https://doi.org/10.1145/3173574.317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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