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화만으로 부족한 이유와 교양(리버럴 아츠)의 역할
교양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자신의 에피소드를 하나 쓴다.
어느 프로젝트에서 "왜 한국 대기업의 AX 추진은 이렇게 느린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보통 생각해 보면,
"경영층의 IT 리터러시가 낮다"
"레거시 시스템이 발목을 잡는다"
"예산이 안 나온다"
이런 답이 나온다. AI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리스트가 돌아온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산업구조의 전환이다.
1차 산업, 2차 산업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주역이었다. 논을 갈고,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한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보인다. 기술은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익혔다. 단련하면 어떻게든 됐다.
하지만 3차 산업은 서비스, 금융, IT 가 주역이 된 순간,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보, 설계, 전략 등으로 형태가 없다. 또한 만질 수도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체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정의해야 한다.
여기서 "추상적인 사고"가 필요해졌고, 한국의 대기업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DX나 AX의 문제가 아니다. IT의 문제조차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개선하는 힘"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화하는 힘"은 전혀 다른 근육이다. 한국 제조업은 전자를 극한까지 갈고닦은 결과, 후자가 제대로 키워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제조업의 개선 활동을 생각해 보라. 같은 방향을 향해 계속 최적화하는 능력은 세계 최고다. 현대, 삼성, 포스코 등은 모두, 이미 있는 방향을 극한까지 갈고닦는 힘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하지만 개선 활동은 방향 자체를 바꾸는 힘이 아니다. 방향을 바꾸는(피벗하는)데는, "지금 방향이 맞는가?"라는 추상적인 물음을 세우고, 언어화하고, 검증하는 힘이 필요하다. 대우, 한보, 쌍용 등은 돌진하는 힘은 있었지만, 피벗에서 쓰러졌다.
DX의 문제를 "IT 투자 이야기"로 세로로 파고들어도 이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산업구조의 전환"과 "인간의 인지 특성"을 가로로 연결한 순간에 비로소 보였다.
참고로 이 발상은, 의식적으로 "자, 산업구조론을 여기에 적용해 보자"라고 생각해서 나온 게 아니다. 눈앞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설명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손이 뻗었다.
하나 더 쓴다.
"넘을 수 없는 시련은 오지 않는다"
라며 자주 듣는 말이다. 자기계발서에 쓰여 있다. 상사가 부하를 격려할 때도 쓴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다. "그거, 생존 편향이잖아."
넘지 못했던 사람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있는 사람은 전부 "넘은 쪽"이다. 그래서 "넘을 수 없는 시련은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오고 있다. 와서, 쓰러진 사람은 그 자리에 없을 뿐이다.
통계학의 개념 하나로, 통속 심리학이 3초 만에 해체된다. 이게 "가로로 뛰어넘는" 것이다.
2장에서 "언어화해서 AI에게 던져라. 돌아온 것에 논리적으로 파고들어라. 이것만으로 무엇이든 된다"고 썼다. 거짓말은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80점에는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80점에서 멈춘다. 가로의 깊이가 나오지 않는다.
어떤 뜻인가? "언어화 → AI에게 던진다 → 파고든다"의 루프는, 눈앞의 문제를 직선적으로 깊이 파는 힘이다. 테스트 계획이라면 "테스트 관점은?" → "리스크는?" → "우선순위는?"으로, 하나의 선을 파 내려간다.
이것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이 문제,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로 전개다.
산업구조론과 AX. 통계학과 자기계발. 이 둘을 연결하는 발상은, 직선적인 깊이 파기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여기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교양(리버럴 아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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