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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바라는 마음

by 말자까


경마 회사 소속의 말 동물병원에서 오늘 들은 ‘기적’이라는 단어는 사뭇 낯설었다. 나는 18년째 말을 접하며 경마 시행을 위한 여러 역할을 하며 순환 근무하다가 현재는 제주에서 말 동물병원 운영 역할을 맡고 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말이라는 동물은 반려동물보다는, 경제적 목적의 산업동물로서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대부분 접하는 경주용 말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리뼈 골절이나 인대 파열 같은 경주에 큰 지장을 주는 질병이 생겨서 상금을 획득할 확률이 줄어드는 경우에는 질병 치료를 연장하지 않을 때가 흔하다. 또한 나이가 많거나 특출난 혈통이 아닌 경우 역시 주인은 말의 효용 가치를 생각하여 치료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 며칠 전부터 여러 루트로 복잡한 사연을 알리는 말 한 마리가 다소 요란하게 내원했다. 그 말은 경주마로서는 나이가 꽉 찬 편인 5세의 말인데, 1년 전부터 한쪽 다리의 관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여러 가지 약물 치료와 휴양을 시도해 보았는데 차도가 없는 상황이었다.


주인은 이미 다른 수의사들에게 말의 치료 방법을 물어봤었고, 모두 부정적인 답을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능력 없는 말에게 돈 낭비 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직언을 했고, 또 누군가는 이미 늦어서 절대 고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우리 병원에 찾아와서 최종 판단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 팀은 정황을 파악하고 세밀한 정밀 진단을 해 보았다. 역시나 아쉽게도 모든 상황이 수술을 하더라도 경주에 다시 복귀할 확률이 지독하게 희박하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다른 수의사들처럼 그냥 안 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려고 애쓰며, 현 상황이 여러 관점으로 볼 때 수술을 하는 것이 큰 효과가 없고, 특히 경주에서 잘 달릴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보통 이쯤 말하면 경제적인 여건과 말의 활용 가치를 저울질해보며 대부분 복귀의 기대를 접는다. 아니, 내가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자체 판단을 하고 말을 포기하기에 병원에 아예 오지 않는다.


여튼간에 나는 나의 최후통첩으로서 진료가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다고 여기며, 이미 다음 예약 환자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내 설명에도 주인은 돌아가지 않고 묵묵부답이었고 정적에 다들 조용해졌다. 그 어색함을 깨고 모두의 예상도 깨며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수의사님, 그래도 한번 해 보시죠.”


나와 주변 수의사들, 주인과 함께 온 동료조차도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희망을 깨야 했다. 결국 현재 동물병원 총괄 역할을 하는 내가 다시 어둠의 판정단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주님, 지금 보신 사진처럼 현재 질환이 매우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더라도 지금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발을 할 것이고, 그러면 경주준비하며 조교를 시작하다가 다시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니, 경주에 복귀할 수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주인은 내가 한 말을 마치 다른 해석기로 돌려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주인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나는 기적을 바랍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한번 해 주십쇼.”

가능성을 저울질하여 나온 결과를 알려주는 이성적인 나에게, 기적을 바란다는 주인의 감성적인 말은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기적은 ‘된다’ ‘안 된다’의 저울질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일종의 기도이자 염원이기 때문이다. 사실 임상 치료에 있어서 절대 안 된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생명의 영역임은 자명하고, 나 역시 경험상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죽거나 말도 안 되는 확률로 회복한 상황을 경험했었다. 말 그대로 ‘기적’은 예측을 벗어나는 영역인 것이다. 고심 끝에 나는 내 예측에서 벗어나 보기를 염원하며 주인의 손을 잡았다.


“... 네. 그러면 수술 예약을 잡겠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데도 기적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 정도의 간절함일지 가늠이 가진 않는다. 나 역시 관절 안에서 덧자란 뼛조각을 수술적 요법으로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을지, 활막의 염증이 어느 정도 회복될지, 관절 바깥쪽의 문제는 어느 지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없었다. 많은 책과 논문들을 뒤져보며 방법을 가이드를 받고 싶었으나, 이 상황과 완전히 동일한 케이스는 찾지 못했다. 역시 외국에서도 이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수술은 역시 꽤 오래 걸렸다. 관절경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그래도 샅샅이 뒤져 가면서 최대한 염증을 일으키는 뼈와 조직을 제거했다. 수술 중 아무리 노력해도 원인 해결이 안 되어서 난감했으나, 그래도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염증 조직을 제거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그냥 그만할까 싶기도 했는데, 시간 구애 없이 계속해보자고 했다. 결국 완전히 해결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술 전보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영상 결과를 확인하고 늦은 시간이 돼서야 수술을 마무리했다.


늦게까지 기다린 주인은 정성으로 말을 회복실로 옮기고 말의 땀을 닦아주며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혹여나 주인이 다르게 해석할 까봐 내 마음을 숨긴 채 주인에게 다시 동일한 어두운 전망을 펼쳤다. 하지만 주인은 역시나 다른 해석기를 돌리는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날 밤 재활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참을 또 찾아보았다. 마취가 깨면서 말은 멀뚱히 잘 일어났고, 우리 모두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태연한 표정으로 잘도 먹고 잘도 싸며 활기찬 입원 생활을 하는 중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픈 말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경주마로 복귀를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쩔 때는 전염성 질환에 걸려서 경주마로 성장 자체를 못한다. 어쩔 때는 밤 사이 내장이 꼬여버려서 응급 수술 시점을 놓쳐서 죽는다. 어쩔 때에는 복귀까지의 휴양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기에 치료를 포기한다. 혹여나 주인이 치료를 선택하더라도 당연히 실패가 많다. 실컷 수술하고 휴양하고 복귀하려 하는데 다시 병이 재발해서 실패한다. 수술을 했는데 또 다른 합병증이 생겨버려서 말을 포기한다. 수술을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 이미 나이가 차버리는 바람에 포기한다.


그렇게 포기에 익숙한 나에게, 이번에는 기적을 바란다는 고집스러운 주인이 정말 오래간만에 나타났다. 나는 무너진 광산 속에서 말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버티다가 구조된 광부에게 표현하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이 동물병원에서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수술한 말이 과연 경주 복귀를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나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렇게 묻는 사람의 속마음처럼 경주 복귀에 실패한다면 그러게 왜 그걸 건드렸냐고 질타를 받을 것을 안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주인 덕분에 이 말은 다시 주인의 관심을 받은 채 살아갈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재활 관리를 도와줄 것이다. 무엇보다 관련 질환을 샅샅이 공부하고 시도해 본 우리 팀의 이례적인 경험은 훗날 분명히 더 정확한 수술 방법과 예후 판단에 소중한 도움이 될 것을 안다. 아쉽게도 현재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기적을 아직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저 재활치료하며 기적을 염원해 보는 진행형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3년 전에 만들어 놓은 기적의 표본이 있다. 3년 전 나는 누운 채로 내원한 망아지의 썩은 장을 절제하고 이어 붙이는 응급 수술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음 해에 재발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배를 열고 재수술을 하여 결국 또 살아났다. 그리고 이 말은 올해 3세가 되어서 늦깎이로 마침내 부산 경마장에 입사해서 현재 첫 출주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요즘 매일같이 홈페이지로 그 말이 언제 첫 경주를 하게 되는지 살펴보는 게 일상의 큰 기쁨이다. 그 말은 그 기다란 장을 잘라 냈는데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재수술에서도 기어이 회복을 해낸 게 기적이다. 그리고 잘 성장하여 경마장에 입사해서 다른 말들과 경기를 겨룰 수 있는 경주마로 성장한 것 자체가 경이로운 기적이다. 만약 그 당시 내가 안락사를 권유하고 말을 포기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다. 기적은 사실 이렇게 누군가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누구에게나 매일같이 기적이 생기고 사라지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그리고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애초에 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과거 경험의 축적을 진리로 여기고 미래를 선택하여, 애초에 기적을 자체 차단했을 수도 있다.


인생도 생명체와 같다. 우리의 삶 역시 매순간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그 덕분에 ‘기적’이란 게 여전히 어딘가에서 씨앗을 희미하게 싹 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를 포기하는 게 흔한 우리 동물병원에서도 기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절대’가 존재하지 않는 한 ‘기적’이 뿌리내릴 토양은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적이 찾아와 줄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그것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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