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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하고 싶은 자, 퇴원하고 싶은 자

by 말자까

6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여름 제주도 볕이 어느덧 무겁도록 따갑다. 제법 쨍쨍한 여름의 온기와 습도를 몸의 감촉으로 느끼는 지금, 제주도 말수의사들은 이제 조금만 버티면 살짝 한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위안을 하기도 하는 시즌이다. 봄~여름에 임신해서 이듬해 봄~여름에 출산하는 말의 사이클로 볼 때, 임신 출산과 관련된 주요 업무도 곧 끝이 보인다.


하지만, 중환마에 대한 치료를 하고 있는 2차 동물병원인 우리 병원은 끝까지 끝이 아니다. 태어나서 문제없이 잘 자라던 망아지들이 2~3개월 차가 되면서 폐렴이 걸리기도 하고, 설사를 하기도 하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아무래도 두세 달 동안 어느덧 제법 체격도 키우고, 젖도 곧잘 빨 줄 알기 때문에, 생후 2~3일 된 신생 망아지의 위중한 케이스에 비해서는 생사의 갈림길이 조금 더 안정적이기는 하다. 딱 그 정도의 망아지들이 주요 손님이 되는 시즌이다.


사람 병원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호전되면 일반병동으로 옮기는 것처럼, 우리 말동물병원도 병동은 하나지만 마음속에서는 위급한 적색불에서 주의해야 할 노랑불, 그리고 안정적인 초록불까지 환축에 대한 나름의 규정 기준이 있다. 보통 개복수술, 그중에서도 장문합 수술 등의 수술 과정이 복잡하고 난해하여 합병증이 우려되는 수술 후에는 술후 최소 1주일간은 빨간색 적색불이다. 매일매일 혈액검사를 돌리는 아침이 되면, 항상 성적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처럼 검사기기를 조급하게 노려본다.


입원말이 첫 끼를 먹고 변으로 배출될 때까지의 술후 3일까지는 항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다. 밥을 덜 먹거나 염증 수치가 살짝만 올라도 우리는 도돌이표처럼 이 상황을 계속 되뇌며 팀원 간 난상토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빨간불 망아지가 노란불이 되고 초록불이 되기도 한다. 노란불이 되기 시작하면 말을 빨리 퇴원시키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더 우위에 간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 회복추세가 될 때 일단은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이다.


간혹 입원실에 너무 편안함을 느끼는 주인들이 있다. 망아지가 편안함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주인은 입원실에 더 오래 두어야 마음이 편안해한다. 심지어, 우리 기준에 이미 초록불로 넘어간 팔팔한 망아지를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물길 원하는 경우에는 다소 부담이 간다. 잘 먹고 잘 싸는데 할 것도 없고 뭐가 문제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해도 언제 어떤 사건 사고가 새로 생길지도 모르고, 진료 측면에서 우리가 신경 써줄 게 없는데, 말을 위탁만 해주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원래의 집에서 편하게 방과 초지를 넘다 드는 것보다, 병원 마방 안에만 있는 게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주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관리를 해주는 시스템 속에서 가능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사람 병원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집에 안 가고 입원실에 오래 있기를 원하는 나이롱환자처럼, 말병원 입원실의 터줏대감이 되기를 원하는 이런 환축의 주인과는 서로 간의 밀당을 해야 한다.


그런 장기 투숙객에게 정기 혈액검사와 임상검사를 할 때는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제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어떻게든 초록불이 유지가 되어야지 말을 퇴원시킬 수 있는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터줏대감 환자에 대한 검사 측정기를 기다리며 기계를 신나게 노려보았다. 정상 범위 내의 결과수치가 나오면 초록불을 지지하는 내 든든한 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드디어 장기 입원말을 퇴원시키고, 깨끗이 정리된 마방을 보면 내 방을 누가 청소해 준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반면에 어떤 주인들은 하루빨리 말을 퇴원시키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입원비와 진료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기간이 정상적인 기간이길 우리도 역시 간절히 바란다만, 간혹 합병증이 생겨서 합병증 치료로 입원기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날 때도 있다. 이럴 때 예상 금액보다 비용이 넘어서면, 주인은 마음속으로 갈등하면서 매일같이 퇴원 날짜를 물어본다. 그때 나는 또다시 밀당을 해야 한다. 주인의 뜻대로 우리도 망아지가 퇴원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꼭 이럴 때는 검사 결과가 빨간색으로 향한다.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주인이 정 퇴원시키고 싶어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는 외부 개인 수의사에게 술후처치를 안내하고 진료를 이관한다. 그러면 외부 수의사는 목장 방문진료로 투약처치를 이어간다. 내가 퇴원 후 진료와 관리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퇴원지시사항을 구구절절하게 써주기는 하지만, 내 마음이 못내 찜찜할 때도 많다. 그럴 때는 며칠 후에 팔로업 전화를 한번 해본다. 전화 신호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또 다시 성적표를 받는 순간 같다. 말이 좋아졌다고 하면 가장 안도감이 든다. 말이 안 좋아졌다고 하면 그러길래 왜 이리 일찍 데려가셨냐고 말을 하고 싶다가도, 내가 뭘 놓쳤는지에 대한 자책과 의구심이 돌아와서 또 괴롭다.


여름의 초입, 오늘도 우리 병원은 빨간불과 초록불, 그리고 입원하고 싶은 자와 퇴원하고 싶은 자가 혼재되어 엎치락뒤치락하며 여전히 분주하다. 뭔가 진하게 매달려 있지는 않지만, 입원과 퇴원의 줄다리기 자체만으로도 똑같은 체력을 소비하는 것 같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지만 미국주식을 하는 나에게는 이 상황이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열어보는 미국 마켓맵 (market map: 주식을 사각형의 크기와 색깔로 등락과 현황을 직관적으로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 이랑 오버랩되기도 한다. 오늘은 다행히 금리 이슈를 넘어서며 기술주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초록색 물결이다. 초록색의 대세 맵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초록색 옷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이 기운 그대로 동물병원에 출근하면 초록불 우위의 행렬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분위기 이어가며, 오늘도 초록 군단 내 변호인을 가득 세워서 나의 최종 판정에 주인이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밤새 안녕하신 입원 말들을 궁금해하며 상자를 열어보러 가는 출근길 내 머리속은, 알록달록 색색의 구슬이 가득 차 있는 ‘입원실 맵(map)' 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볕이 뜨거워지는 시즌이 다가오는데도 개미는 한숨을 돌릴 베짱은 없는 것 같다.


오늘따라 초록초록한 미국주식 마켓맵 https://finv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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