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돈 사용 설명서
1만원 구출기
나는 휴일에 방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귀차니즘 직장인이다. 특히 돈과 관련한 것들은 몽땅 다 귀찮아한다. 가령 이번 달에는 월급이 정확히 얼마가 들어왔고 어떻게 빠져 나가는지에 대한 계산을 하는 게 너무 귀찮다. 가격 비교를 해가며 사야 하는 행위도 나에게는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그저 쉬는 날에 이불 동굴에서 뒹굴 거리면서 영상이나 책을 보는 하루가 나에게는 가장 안락하다. 하지만 그 안락함 역시 돈으로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알긴 안다. 나와 달리 항상 알뜰하게 돈을 모아가는 동료를 보면, 나도 돈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생각은 잠시 뿐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져서 다시 나의 편한 방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휴일 동료가 추천해준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돈 사용 설명서 : 돈을 웃게 하라!’ 라는 책을 불현 듯 읽게 되었다. 웬만한 자기계발서는 고집 센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전혀 다른 관점과 독특한 경험담으로 나를 책 속에 바로 빠져들게 했다.
저자 고이케 히로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돈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친절히 말한다. 특히 돈은 ‘살아있는’ 존재이고 내가 돈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줘야, 돈도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돈을 인격체처럼 여기고 대화하며 존중해 주는 개념이 꽤 신선했다. 돈이 인격체라면 나는 언제부터 돈을 귀찮아하고 밀어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보니 유년시절부터 집안의 불화는 항상 돈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 때부터 돈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네가 항상 문제야.’ 라고 나는 돈을 오랜 시간 막연히 밀어내기만 했다. 갑자기 돈에게 미안해졌다. 늘 내 옆에 같이 있었는데도 오랜 선입견으로 돈을 외면한 내 자신이 머쓱해졌다.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싶었다. 일단 현재 나에게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돈을 한번 찾아서 활용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디 있니? 외면 받던 내 돈아. 도대체 어디 있니?’ 의식적으로 레이더를 세워봤다.
불현듯 내 휴대폰 메시지 더미 중에서 만료가 임박한 대형마트 1만원 상품권 쿠폰 메시지를 언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6개월인가 전쯤에 어떤 카드 이벤트 행사에서 받았던 것 같다. 쿠폰 당첨 문자는 좋았으나,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그 마트까지 가서 그것을 소모해야 한다는 귀차니즘이 바로 밀려왔다. 그 이후엔 하루하루 쌓여가는 수많은 메시지들에 뒤로 밀려났고, 결국 나에게 잊혀졌다. 솔직히 말하면 마트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그 생각이 잊혀 지기를 기다렸던 것도 같다. 부랴부랴 문자를 찾아보았다. ‘오마이갓!’ 사용 만료일이 내일까지였다. 책의 저자 고이케 히로시가 나에게 외쳤다. ‘이봐, 구조요원. 오늘은 외면당했던 너의 돈님을 구출하는 날이야. 내일이 되면 죽는다고. 그렇게 지금처럼 무시할 게야? 아니면 구조할 게야?’ 당연히 이성적으로는 어서 그 쿠폰을 현금화 하는게 맞지만, 내 안의 귀차니즘 본능은 마구 소리쳤다. ‘이봐, 집순이. 우리 귀한 휴일에 이불 동굴 속에서 하루 종일 구르기로 했잖아. 딱히 살 것도 없잖아. 고작 만 원짜리 쿠폰 하나 쓰자고 그 머나먼 마트까지 나가는 게 말이 되는 거야?’
격렬하게 내 안의 생각들이 다투다가 놀랍게도 구조요원이 이겼다. 그 날은 그 책이 내 마음을 유독 건드렸고, 오랜 시간 내가 돈을 외면해서 미안하다는 감정이 커진 마법 같은 날이었다. ‘그래. 집순아. 동굴은 사라지지 않지만, 만원은 내일 지나면 사망하잖아. 오늘이라도 한번 내 돈 한번 좀 사랑해줘 보자.’
그렇게 나는 놀랍게도 평소와 달리 동굴과 이별하고 바로 마트로 출발해 보았다. 분명히 걷기에는 멀고 운전하기에 주차가 어렵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곳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걸어서 겨우 30분 거리의 위치였다. 마트에 들어서서 고객센터에 가보니 메시지로 온 쿠폰번호를 입력하면 상품권을 발급해주는 기계가 정말로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가 하라는 대로 이리 저리 조작해보니, 정말로 만원 짜리 상품권 한 장이 툭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 구조된 만원이 너무나 반가웠다.
‘어이쿠 돈님, 오셨습니까.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제가 돈님이 나에게 오고 싶어 하는 줄도 몰랐는데 소멸 직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네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극적으로 구출한 만큼 오늘 당신을 최고로 멋지게 사용해 주겠습니다.’
만원 짜리 상품권을 꼭 쥐고 마트를 쭉 둘러보았다. 만원으로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소비했다고 여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며 한층 한층을 둘러보다가 제법 마음에 드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비싸고 잘 안 먹는다고 사지 않던 다이어트용 샐러드 팩이었다. 대형 마트에 와보니 다양한 종류가 즐비해 있었고 오늘 따라 유독 눈이 갔다. 돈은 싸구려 식품을 사면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지금 나에게는 현재 이 식품이 충분히 귀하고, 내 삶에 가치롭고 내 몸을 이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돈은 식품으로 변해 내 몸 어딘가에서 귀한 에너지로 쓰일 것이고, ‘덕분에’ 나는 건강해지고 날씬해 질 것 같은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 감사함을 담아서 리코타 샐러드와 크랩 샐러드 두 팩을 구매했더니 1만원 남짓이었다. 그렇게 내 메시지 속의 이벤트 쿠폰은 상품권으로 변했고 그 상품권은 다시 음식으로 변했다. 집에 와서 먹기 전에 다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어이쿠 돈님, 이렇게 신선한 음식으로 변해서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내 기분도 상쾌하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맛은 그냥 먹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나는 1만원의 내 돈을 구출해 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돈을 인격체로 대하고 돈에게 관심을 가지며 돈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해본 날이었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며 순환할 준비가 되어있는 돈이었는데, 귀찮다고 돈을 무시하고 정체되게 한 게 정말 미안했다. 동굴에서 나와서 실행을 해본 나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우리 집순이가 돈도 구출할 줄 알고,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다 컸네. 내가 참으로 뿌듯하다. 돈을 웃게 하는 방법을 이제 알겠나? 그렇게 돈을 누구보다 가치 있게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알아서 찾아올 거야. 앞으로도 돈이 웃을 수 있도록 많이 사랑해줘.’ 밀린 메시지 더미에서 구조되어서 이제는 내 몸 속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하는 내 돈 만원은 이제야 활짝 웃고 있을 것 같다. 돈의 순환과 가치로운 소비에 동참해본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음날 나는 회사에 가서 동료에게 의기양양하게 나의 후일담을 알렸다. 동료는 나의 변화에 휘둥그레 놀랐고, 앱테크, 거시경제, 금리 등등 본인의 보따리를 슬그머니 꺼내기 시작했다. 너무나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동굴에서 책을 읽다가 마트에 가게 된 그 날을 기점으로 뭔가 변화했다. 우리는 어떤 돈을 구출하고 또 어떻게 소비를 해야 최고로 돈을 존중해 주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은 순환하지 않는 돈을 어떻게 최고로 잘 쓰이게 하는지 궁리하고 실행하느라 하루가 바쁘다. 앞으로도 나는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돈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그 돈을 잘 소비하면서 돈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의미 없이 쓰여지거나, 정체된 돈을 구조하러 다니는 것은 귀찮기는 커녕 생각보다 재미있다. 여전히 나는 휴일에 방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의 돈을 인격체처럼 여기며 활짝 웃게 하는 게 내 임무이고, 필요할 때는 즉각 실행하는 ‘구조요원 집순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