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손주들이 간만에 찾아 오면 이런 말을 하신다.
"올 때는 좋은데, 갈 때는 더 좋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한동안 할머니집에 가면서 한동안 외로이 살았다. 육아 해방의 자유에 편안할 것 같으면서도, 그 허전함을 잠재우느라 적응이 꽤 걸렸다. 사실 어쩌면 아직도 적적한 밤공기는 적응이 안된다.
동물병원에 입원한 말들이 꽉 차 있고 응급상황이 팡팡 터져서 정신이 없다가, 오늘은 입원실이 허전한 날이다. 아주 애간장을 태우면서 지나간 시간들과 달리, 오늘 하루는 참으로 시간이 멈춘 액자를 보는 것 같은 평면적인 느낌이다.
말을 수술하고 입원한 말을 관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육아와도 비슷한 것 같다. 한 마디로 아주 그냥 손이 간다. 밥은 잘 먹었는지, 똥은 잘 싸는지, 운동은 잘 했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수시로 cctv를 보며 지켜보게 된다.
아이들 역시 하루종일 밥 주고, 공부 봐주고, 놀아주고, 싸우면 말려주며 하는 것이 포인트는 다르다만 하루종일 눈 떠서 눈 감을 때 까지 동고동락한다는 점에서 마음씀이 비슷하다.
야간에 수술하느라 요란했던 진료실 바닥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꼭 숨긴 양 너무나 말끔하다. 빈 입원실이 허전하다 못해 허망하기도 한건 아무래도 내 오바가 맞다. 꼭 그래야만 해야하는 건 아니나, 코스요리 먹으러 왔다가 에피타이저만 먹고 나간 느낌이랄까. 상대의 요구에 맞춰야 할 뿐, 나의 요구에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도 이제 더 크면 점점 더 요구가 커질 것을 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니면 어쩌면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울음으로써 아이는 나에게 원하는걸 요구해왔다. 아마도 아이들의 세상의 부분에 내가 차지하는 영역이 이제 점점 줄어들 것을, 그리고 내가 다 봐주지 않아도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막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도 같다.
조용한 아침. 아이가 궁금하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조용한 저녁. 아이가 궁금하다.
밥은 잘 먹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럴 때일 수록 마음을 바로잡고, 현재의 책무에 더 신경쓰고, 내 일상을 더 단도리해야, 앞으로 더 유연하게 변화에 대할 수 있겠지.
빈 집과 빈 입원실을 보며 이런 저런 상념이 떠돌다가 깨달았다. 그러나 저러나 역시 나는,
"말과 아이들이 떠날 때 보다는 있을 때가 좋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올 때는 좋은데 갈 때는 더 좋다' 고 느낄 할머니가 된다.
결론
'있을 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