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페르소나의 하루

by 말자까



페르소나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 이후 라틴어로 섞이며 사람(Person)/인격, 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고, 심리학 용어가 되었다. 통상적으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SNS 프로필 사진이나 어떤 인물이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특정 고유 이미지 같은 것 역시 페르소나로 설명하기도 한다.- 나무 위키 발췌


다중인격 or 부캐

다중인격은 비정상의 범주에 속한다는 관념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존재했던 것 같은 세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나 기타 매체에서 범죄자나 사회 부적응자에게 주로 묘사되던 다중인격의 판단 잣대가 낮춰지며 요즘 현대인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다양한 캐릭터가 필요한 연예인들이 부캐를 하나둘 만들어 가더니, 요즘은 직장인에게도 본업보다는 부캐를 궁금해하고 있다. 카카오톡도 멀티 프로필 설정을 추가한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가 다가오니 나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예전부터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인지 한 우물만 파는 것 같은 우직함이 아닌 얄팍한 여러 개의 거짓 유리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 내 모습이 그렇게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될 때까지 원캐였던 나는, 직업을 가지고 아이를 가지고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기고 하면서 사회 속에 역할을 얻어가며 캐릭터가 분화되었다. 사실상 내가 분화시켰다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이 다양해지며 나에게 요구하는 캐릭터가 제작기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는 한없이 움직이고 싶지 않아 하는 무지막지하게 게으른 내가 돋보이고, 아이들에게는 집사 같은 관찰력으로 무언가 더 해주고 싶은 능동적인 내가 돋보인다. 회사에서는 조직 색에 맞추려는 가면을 쓰고 있고, 출퇴근 시간에는 관심영상과 음악으로 나를 지켜주는 다양한 총알을 장전한다. 덕질은 별개의 나만의 뿔이고 행복이며 공부할 때는 세상이 안 보이고 적막하다. 어떤 영역에는 철저히 개인적이다가도, 어떤 포인트에서는 또 친절함과 오지랖을 발휘하는 구역이 있다. 이렇게 짜인 이유는, 캐릭터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코 앞에서 피투성이와 죽음을 목격하다가 집에 와서 순진한 눈의 아이를 온전히 안아주기에는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게 버퍼가 필요하다. 그래서 출퇴근길에 접하는 음악이나 영상이 이젠 또 하나의 나의 숨 쉴 곳이 되며 또 다른 캐릭터가 입혀진다. 이러한 나를 어찌 하나의 색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를 가장 옆에서 보는 남편조차 과연 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나의 페르소나 각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거저거 다 궁금한 나의 선천성 말고도, 멀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만들어진 합작품 같기도 하다.


만약 아이들에게 게으름을 발휘고, 덕질에 논리를 따지며, 일에서 오지랖을 부렸다가는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될 것을 나도, 상대도 알기에 이런 팽팽한 균형 속에서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삶이 현재 트렌드와 맞아떨어져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안정감이 요즘에 부쩍 든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놓고 여러 가면을 쓸 수 있고, 그 가면 하나에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후 다른 가면으로 순식간에 바꾸는 이런 삶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안도감은 나를 오히려 더 편안하게 해 준다. 어쩌면 나는 여러 가지 역할놀이를 해도 문제가 없고, 혹시 그중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역할이 있으니까 라는 방어 감이 있어서 생기는 안정감일 수도 있다. 유한한 삶에서 몰빵보다는 분산투자로 사는 게 혹여나 생길 위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일 수 있으니깐. 무엇이 최선인지는 제각기의 삶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멀티 페르소나로 시작하고 끝내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의 일상 역시 이상할 것 없이, 하나의 소중한 삶의 형태임을 왠지 선포하고 싶어 졌다. 페르소나는 각기 다르지만 종국에는 행복과 사랑을 향해 가는 것이고, 그 동력 역시 같은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의 부캐들아 오늘도 열심히 너의 캐릭터를 펼치렴. 너희 모두를 인정한다. 눈치 볼 필요 없어. 돌아올 길만 잊지 않으면 된단다. 가면들의 시대가 왔음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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