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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말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by 말자까

선한 사람은 눈이 선하다. 총명한 사람은 눈이 총기가 있다. 우린 도대체 무엇을 보고 판단할까? 검은 자가 투명하고 흰자위가 깨끗한 상태를 말하는 걸까? 동그랗고 크게 보이게 하는 눈꺼풀의 생김새를 말하는 걸까?


동물의 눈은 또 어떨까?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생명체의 순수하고 동그란 눈망울을 보면 무심한 사람도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그 매력을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말의 눈동자. 나는 말의 눈을 정말이지 좋아한다. 말의 눈은 윤기 나는 근육질 몸매에 딱 어울릴 만큼의 매혹적이고 커다란 예쁜 눈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은은한 쌍꺼풀 한 겹과 촘촘한 속눈썹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한번 눈이 마주치면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눈이 큰 만큼, 눈동자의 속도 잘 보인다. 말의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각도에 따라 투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안의 짙은 갈색 무늬의 홍채가 신비스럽게 펼쳐져 보이기도 한다.


말은 눈이 긴 얼굴의 양 옆에 붙어 있어서 코앞의 물체를 단숨에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가까이 가면, 나란 인간이 누구인가 자세히 보기 위해 귀를 쫑긋 움직이고 코를 벌렁거리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한쪽 눈씩 내 눈을 맞춰가면서 나를 관찰한다.


그러다 긴장이 풀리면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선한 눈동자가 참 아름답고 경이롭다. 말은 사람처럼 다양한 희로애락의 표정이 없어서, 눈과 귀의 움직임 정도로 마음을 짐작한다. 하지만 말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 정도로도 무슨 마음인지 파악한다. 두려운 눈, 궁금한 눈, 화난 눈, 졸린 눈. 그저 눈동자와 눈꺼풀 정도인데 참으로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가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나 역시 일하면서 동물병원에 오는 말의 눈을 하루에도 많이 본다. 하지만,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냥 내가 야외의 울타리 안에 서있는 말 옆에 조용히 다가가서 햇살 속의 투명한 눈을 하염없이 관찰하는 평안한 순간이다.


내가 동물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저런 눈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왠지 영혼이 맑을 것만 같다. 동물은 선하고 복잡하지 않은 마음을 가져서 순수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나의 상상이 억측일지는 모르겠다.


점점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운 요즘, 우리는 각자의 영혼을 쉽게 내보이기 왠지 두렵고 나도 모르게 힘을 주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려동물에게 위안받고 그 순수한 사랑과 우직함을 느껴가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 사람보다 태생적으로 선한 영혼을 가진 동물은 분명 좋은 치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늘 있었으나, 자연 같던 순수한 눈을 가진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탁하게 변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순수’로의 회귀를 갈구하는 것 같다. 아마도 광활한 자연이나 좋은 음악과 예술 작품을 찾아가는 결처럼, 우리는 그저 본래의 순수한 아름다움 속에서 긴장과 힘을 빼고 싶은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지치고 혼란스러운 요즘, 동물의 순수한 영혼과 맑은 눈이 더 많은 이들을 위로해 줄 순간순간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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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B TV동물농장 ('2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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