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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중 아는 척 하는 방법 - 말쓸신잡

by 말자까

봄 여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 있다. 얼마 전 태어난 망아지와 엄마가 바짝 붙어서, 어미젖을 열심히 먹는 장면이다. 봄여름 제주 여행 중 차창 밖에서 문득 이런 풍경을 발견한다면, 이 글을 기억하며 조금 더 이들을 소중하고 이쁘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전국 팔도 중 제주에서 거의 대부분의 망아지가 탄생하고 있으니, 오늘은 망아지와 부모에 관한 알쏭달쏭 OX 퀴즈 5개를 엄선하여 적어보았다.


1. 모든 말은 아빠 없이 자란다?


정답: O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그렇듯,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성장해서 분리가 될 때까지 모든 말은 오로지 어미말과 함께 한다. 그래서 모든 말 가족은 편모 가족이다. 그러고 보면 씨수말은 짝짓기 직후 바로 이별하기 때문에, 망아지는 아비를 모른다. 경주마에게 아비의 혈통은 말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사실상 모든 뒷바라지는 어미말이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말 세계에서 씨수말과 씨암말의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봄이 되면 우수한 씨수마에게 암말들은 투표를 해가며 줄을 서고, 씨수마들은 본업에 충실하느라 봄-여름 내내 분주하다. 하지만 가을부터는 씨수말은 바로 백수가 된다. 저 넓은 초지에서 홀로 편안하게 유유자적하게 풀 뜯어먹으며 극진한 보호와 대접을 받으며 이듬해 봄까지 논다. 하지만, 씨암말들은 쉴 틈이 없다. 임신과 동시에 뱃속에 태아를 품는 게 11개월, 또 출산 직후 다음 임신을 시도하고, 그와 동시에 망아지들 젖 주고 보살피느라 여지없이 매일매일이 고단하다. 그야말로 연년생 대잔치다.


제주 여행을 하다 문득 귀여운 망아지를 보게 된다면, 그 바로 옆에서 키우느라 몸고생 하는 엄마가 분명 있을 것이다. 엄마말도 한번 눈길을 준다면, 어쩌면 어미가 속으로 미소 지을지도 모르겠다.


2. 태아의 사이즈는 아빠를 닮는다?

정답: X


태아의 성장은 어미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뱃속에서 태아와 연결된 요막 융모막과 태반 표면의 미세자엽의 밀도 및 복잡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출처: Equine behavioral mediciine, Bonnie beaver, p 167). 물론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조합이 되어 모색, 사이즈, 다리의 모양(지세), 발굽의 모양 등이 결정이 되겠지만, 대체로는 어미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망아지에게 너 누구 닮아 이리 크니?라고 묻는 다면 '엄마요'라는 답이 우세하겠다. 만약 혈통 좋은 잘생긴 씨수말에 몸 좋은 씨암말이 부모라면, 망아지는 그야말로 로열패밀리로서 뱃속부터 농가의 큰 자랑과 관심일 것이다.


3. 말은 공동육아를 한다?

정답: X


사람의 경우 한 방에 여러 가족이 같이 산다면? 아마도 엄마는 엄마끼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신나게 노는, 이를테면 엄마 좋고 아이 좋은 공동 육아의 현장이 될 텐데 말은 어떨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이놈의 망아지들은 분리불안처럼 제 엄마 반경에서만 맴돈다. 철저히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있기 때문에 그 넓은 초지에 여러 쌍을 풀어놓아도, 쌍쌍이 다닐 뿐이다. 어미말은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망아지에게도 젖을 내주는 관용을 허용하지도 않고, 망아지 또한 다른 엄마에게는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의의 사고로 고아 망아지가 생기는 경우 대리모를 구하는 게 사실상 어렵고 사람의 노력이 많이 가기 때문에, 고아 망아지에게 분유를 먹일 수 있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험난하다.

4. 말은 누워서 잠을 자지 않는다?


정답: O와 X


말은 초식동물이기에, 야생에서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하루에 약 18-19시간을 주위를 의식하면서 깨 있도록 진화했다. 말은 하루에 2시간 정도는 꾸벅꾸벅 졸고, 3~4시간 동안 잠을 잔다. 그중 2~3시간의 깊은 수면 (SWS, Slow wave sleep)과 1시간 이하의 얕은 수면 (REM 수면, rapid eye movement sleep)을 한다. (출처: Equine behavioral medicine, Bonnie beaver, p 257). 그러면 3~4 시간 동안 말은 누워서 잠을 잘까?


사실 말은 서서도 잘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뒷다리의 잠금장치가 있어서 근육이 쉬면서도 서서 잠을 잘 수 있는다. 이 역시 포식자의 움직임에 재빨리 도망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생명의 신비한 구조이다.


하지만 말이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이 드는 환경에서는 누워서도 곧잘 잔다. 특히 마방 안에서 오래 생활한 말들, 그리고 오랜 시간 인적이 드문 초지에서 살아온 노령의 말들은 대자로 누워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잘 자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5. 망아지는 다 클 때까지 어미랑 계속 붙어 지낸다?

정답: X

망아지는 만 18개월쯤 돼야 다 성장한 말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말은 어미젖을 먹으며 자라다가, 생후 약 6~9개월에 젖을 떼고 풀만 먹는 이유기로 간다. 그 때부터 보통 어미와 분리를 시키며 망아지끼리만 한 곳에서 함께 키우기 시작한다. 이젠 어미 품이 아닌 어린이집이다. 꼬맹이들끼리 서너 마리 모여서, 오밀조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내 눈에는 아직도 그 눈매나 발굽 그 모든 것이 깡깡 영락없는 애기 모습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단체생활하는 것 같은 이 녀석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초록초록한 한여름의 제주는 뜨겁다. 봄-여름까지 번식시즌이 한바탕 끝난 이제는 넓은 들판에 있는 어미말과 망아지가 있는 장면이 참 편안하고 아름답다. 치열한 교배 전쟁과 임신, 육아 과정의 난리통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만의 평화라고나 할까.


다행히 잘 태어나 살아남은 3개월령 전후의 한여름 속 망아지들. 나에게 이들은 단연 말의 생에서 가장 초롱초롱하고 생생하고 예쁜 하루하루를 거치는 시기로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망아지. 어미에게 너희들은 그저 사랑일 것이다. 머지 않아 이유하며 홀로 독립하기 전까지의 짧은 몇개월 동안 어미 곁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젖 잘 먹고 쑥쑥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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