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새끼, 내 엄마

by 말자까

어렸을 적 시골에 동네 누렁이가 새끼를 낳으면 조막만한 새끼 대여섯 마리가 젖먹으려고 오밀조밀 붙어있고, 심드렁한 엄마한테 좀더 얻어먹으려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러다 어느새 강아지는 지들이 알아서 크고, 또 몇 달인가 지나면 누렁이는 어느새 배가 불러오고 새끼를 낳는 광경을 보고 살다보니, 동물은 사람에 비해 쉽게 낳고 알아서 커져가는 존재인 줄 알았다.


바야흐로 한참 망아지들과 임신말들이 넘쳐나는 5월 제주 땅은 음의 기운으로 장악된 듯 하다. 말의 임신기간은 사람보다도 약간 긴 열 달이 사뭇 넘는 기간이고 (약 340일), 임신 기간동안 단 한 마리만 품다가 출산한다. 사람과 달리 말은 봄~여름 계절에만 발정이 오는 가임기간이어서 그 때 대부분 임신을 하니, 그 이듬해 봄~여름에는 망아지의 공동 출산 시즌이 된다. 그러니 지금은 제주 어디가나 엄마 옆에 붙은 신생 망아지나, 배가 볼록한 어미말을 지다가다 보기가 쉽다.


사람처럼 오랜 기간 품어서일까? 아니면 한마리만을 낳아서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말의 모성애는 상상 초월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동물병원에는 엄마가 아프든, 망아지가 아프든 무조건 둘이 셋트로 내원하는데, 이들에게는 아픈 것보다 서로가 한시라도 사라지는 것만큼 극악의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작은 마굿간 안에서도 반경 안에 있어야 안심을 하는건지 요 둘이 과연 한 생명체인가 싶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묶은 듯이 서로가 부대끼며 꼬옥 붙어다닌다.


그러다 보니 진료를 하려고 접근하는 수의사는 이들에게 무서운 적이다. 망아지를 살짝 만져보려 하면 어미말이 나를 지새끼 해하는 도적놈 취급하며 흥분을 하고, 어미말을 진찰하려 하면 망아지가 무서워서 그야말로 망둥이처럼 안절부절 온몸으로 날뛴다. 결국 안전을 위해서 진찰을 위한 어른용 보정틀에 엄마를, 망아지도 바로 옆 망아지 틀에 넣고선, 진찰과 처치를 한다. 허나 그것 조차 불안해서 조금이라도 눈 앞에 안보이면 바로 이성을 잃는 이 둘을 보면, 아니 야 나도 엄마인데 너만 이리 유난이냐 퉁박주고 싶을 만큼 불난 호떡집 같은 소란스럽기 짝이없다.


그리 좋아 죽고 못산다 하니 너희 사이 영원히 행복하기를 우리도 바란다만, 안타깝게도 이들에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출산후 배앓이이다. 자궁집 속에서 막달 까지 약 50kg 정도 성장한 망아지가 방을 빼고 나오게 되면 어미말의 터질듯한 뱃속은 순식간에 공간이 생기면서 그동안 거대한 자궁에 눌려있었던 내장 장기가 빈 허공 안에서 제 위치를 잡지 못하고 훌러덩 뒤집히며 꼬일 때가 있다.


엊그제도 출산 4일차 어미말이 뱃속이 불편하다 하여 내원하였는데, 역시 그런 케이스여서 야간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어미말은 자기 배가 아픈것 보다 망아지의 분리에 대한 공포감이 훨씬 커서, 마취제를 넣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눈에 힘줘가며 흥분하며 울부짖다가 수술대로 들어갔다. 망아지는 엄마 수술시간 내내 컴컴한 밤 입원마방 떠나가라 히힝대며 목이 쉬게 울었다. 수술이 잘 끝나면 다행이 이들은 상봉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되면 바로 고아망아지가 되어, 어미젖 없이 혼자 살아남기 위한 다시 한번의 피나는 전쟁이 시작된다. 잘 태어난 망아지 역시 초반에 잘 자라나 싶다가도 장이 꼬이거나 심한 설사를 하거나 폐렴이 생기거나 신경증상이 생기거나 하는, 중한 질환이 이따금씩 발생한다. 어쩌면 내 반경이 병원이라 아픈 애들만 주로 봐서, 흔해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위험을 이겨내고 피해가며 1~2년간 건강히 자라서 성마로 성장한 말들은 당연한 게 아니고, 사실 굉장히 장한 존재이다. 죽고 못사는 이 미친 모성애는 어쩌면, 오랜기간 뱃속에서 하나처럼 지내며 자곡자곡 쌓아간 시간의 연대에 힘입어, 온갖 병마를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는 외동자식과 엄마와의 필사적 전우애같은 성질에서 시작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잘 자라준 모두가 장하지만, 여러해 망아지를 품어내는 씨암말들은 특히나 장한 존재이다. 거대한 배 이고 지고 품느라 한 세월, 이듬해 또 다른 새끼 품느라 한 세월 보내는 노장의 씨암말의 눈과 몸태를 보면 경이롭고 숙연해 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한 존재는 이들을 인내로 기르며 이 사이클을 아직까지 존재하게 해주는 생산 농가 주인들이다. 코로나로 무릎꿇은 정지된 말산업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생명을 기르며 때로는 아파서 잃고 여러가지 이유로 큰 손해를 감당하면서도 버티며 업을 유지하는 극한직업을 가진 장한 주인의 의뢰 덕분에, 나는 망아지들과 어미말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


keyword
이전 18화제주마가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