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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가 뭐 어때서

by 말자까


'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명적인 근육미를 뽐내는 거대하고 멋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긴 다리로 전력질주하는 아름다운 말의 모습을 우리는 대부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소개시켜주고 싶은 친구는 그들과는 다소 다르게 생긴 녀석이다. 제주에 오면, 몸은 작은데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은데 털은 포실포실한 데다 배는 불룩한 게 딱 귀염상인 녀석을 만날 수 있다. 이름하여 무려 천연기념물 347호인 높으신 신분을 가지고 있는 '제주마(Jeju horse, Jeju pony) 라 불리는 녀석들이다.


전 세계에서 경주마로 활약하는 더러브렛(Thoroughbred) 품종의 말을 잘 빠지고 예쁘지만 천편일률적인 마루 인형이라 비유한다면, 제주마는 말이 이렇게도 생기나 싶을 정도로 키도, 얼굴 크기도, 다리 길이도, 털색도, 눈 모양도, 갈기의 스타일도, 성격도 제각기인 핸드메이드 인형 같다. 실제 제주마는 키가 약 125cm, 체중 약 280kg 정도로, 키(체고) 약 160 cm, 체중 약 480kg 정도의 더러브렛보다는 훨씬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요 녀석들끼리 경주를 하는데, 이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얼마 전 제주마 경주를 처음 보는 친구가 말했다. "우와 귀여워라. 애기들끼리 달리기를 하네" 라 하며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허허.. 맞아. 귀엽지?" 라고 얼떨결에 동의하긴 했다.


그래. 뭐 외모로 보면 마루 인형보다는 못난이 인형이 귀여운 것은 맞으니, 첫인상이 '귀여움'이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귀염상 외모에 숨겨진 이면에 대해 할말이 많은 나는 오늘 낱낱이 공개를 해야 겠다.


제주마 해변경주, 2018년 제주도시사배 우승마 '군자삼락'


잘 생기다 못해 몸 선이 아름다운 경주마 더러브렛(Thoroughbred) 품종은 그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세상 쫄보다. 펄럭거리는 비닐봉지 하나에도 너무나도 놀라서 내빼기도 하고, 쉽게 흥분하고 나대다가 다치기도 한다. 사실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품종의 말들은 잘 놀라고, 겁이 많은 성질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에 제주마는 이들에 비해 잘 놀라지도 않고, 겁도 없는 편이다. 내가 제주마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게, 몇 시간 동안 그냥 목줄 하나로 말들을 묶어두며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더러브렛 품종만 돌보던 나에게 큰 문화충격이었다. 만약 더러브렛 이었다면, 저렇게 줄 하나로 혼자 묶어두었을 때 놀랄 경우 혼자 날뛰면서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주마는 제주 토종의 말과 몽골말이 섞이면서 지금의 재래종 제주마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농경 생활에 밭을 갈 거나 수송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제주에서 돌밭을 갈고, 땅을 밟아주며 소 대신 말을 농작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무던~~한 제주마의 성격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제주마는 머리가 좋고 고집이 세다. 동물의 지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내 경험으로도, 관리하시는 분들의 말씀으로도 제주마는 말 중에서는 꽤 머리가 좋은 품종으로 생각된다. 특히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면에서는 다른 품종보다 제주마가 단연 돋보인다. 경주용 제주마는 경주 전후 도핑테스트를 위해서 주사기로 혈액을 채취할 때가 있는데, 이때 주사 경험이 적은 말은 대부분 저항을 한다.


그 실랑이 와중에서도 제주마는 끝까지 자기의 고집을 관철한다. 목을 흔들어대고 몸으로 밀치면서 사람을 이겨내려는 녀석의 고집은 가끔 수의사와 관리사를 지치게 하기도, 위험하게 하기도 한다. 싫은 건 곧 죽어도 싫은 자유로운 영혼 제주마의 옹고집을 한번 보시게 된다면 '귀엽던' 이 녀석을 볼 때 찔끔 뒷걸음질 할 지도 모른다.

제주마는 더러브렛에 비해 잔병치레가 없다. 사실 경주마는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운동선수이다 보니, 크고 작은 다리의 부상이 직업병으로 따라온다. 허나 다리 길이가 짧고 뼈대가 굵은 제주마는 경주 전후 생기는 다리 부상의 발생률이 현저히 적다. 또한 작은 체구 때문에 발굽 마모가 덜하여 경주용 제주마에게는 편자 (말발굽의 마모를 줄이기 위해 신기는 쇠 모양의 신발)를 신기지 않는다. 게다가 돌밭을 견디는 튼튼한 발굽을 가진 덕분에 발굽 질환 또한 더러브렛에 비해 매우 적다.


말의 질환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산통(배앓이)인데, 커다란 배 속에서 긴 내장이 꼬이거나 막히고 가스가 차면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질환을 말한다. 그런데, 제주마는 다른 품종의 말과 비교했을 때 산통(배앓이)의 발생률이 낮고, 장기가 꼬이는 것 같은 치명적인 응급 케이스 또한 비교적 덜 발생한다. 이렇게 잔병치레가 없고 튼튼한 점이야말로, 말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이득이 상당히 큰 매력적인 부분이다.


제주마를 그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제주 축산진흥원에서는 순수한 제주마 혈통을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제주 마방목지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넓은 초지에 수십 마리의 제주마가 한 곳에 모여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서, 제주에서 들러야 할 명소로 손꼽힌다. 나역시 이곳을 참 좋아한다.


보통 망아지가 태어나는 번식 철인 2~7월에는 어미 말 옆에 붙어 따라다니는 귀요미 망아지들도 볼 수 있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탁 트인 초지의 설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일단 제주를 대표하는 우리 제주마의 무리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만 해도 꽤 매력적인 것 같다.

제주 마방목지

이상 근육 미인은 아니지만, 귀엽고 고집 세고 튼튼하고 머리도 좋은 '내구성 최강 귀요미' 내 친구 제주마 소개를 마친다.

(말) 똑똑, 진료왔어요! (나) 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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