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말자까

7년째 살고 있는 우리 동네를 나는 여전히 좋아한다. 모든 게 편리한 위치부터 아이들 학교도 가까워서 만족스럽다. 제주에 온 후 감사히 오랜 기간 같은 전셋집에 살게 되었다. 나는 이 집이 좋았다. 비단 다른 집보다 많이 낡고 고장이 많은 수리 안된 오랜 구축이지만, 그래도 아이 유치원 입학부터 초등학교 졸업까지 함께 해준 이 품이 좋았다. 1층이라 하늘을 볼 수 없고, 낮에도 불을 켜야 했지만, 원 없이 쿵쿵거릴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단점은 대부분 상쇄되었다.


그런데 점점 보일러도 고장 나고, 세탁기 연결 베란다에서 물도 터진다. 벽지가 흐물 해지고, 싱크대 일부가 파손이 되어갔다. 문짝도 점점 내려앉는다.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는 김에, 수리를 좀 요청한 다음 한번 더 재계약을 협상드려볼까 했다. 그만큼 이곳이 아쉬웠나 보다. 집주인이 집상태를 보고 결정을 하러 방문했다. 주인은 집의 낡음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아마 자세히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낡은 싱크대가 있는 주방 바닥을 한참 보더니 나를 보고 물었다.


“아유.. 어떻게 사셨어요..”


나는 당황했다. 나는 잘 살았는데? 다소 낡았지만 그래도 엄청 참으며 버틴 건 아닌데? 내가 새 집에 한 번도 안 살아봐서, 현재 이 집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 못하는 둔함을 가지고 있었나 헷갈렸다.


주인이 떠난 그날부터, 희한하게 집의 단점이 그제야 하나하나 극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네. 벽지도 낡았네. 그렇네. 화장실도 심각하네. 그렇더라도, 내가 아끼며 오랜 시간 산 곳이라 그런지, 냉정한 집의 평가에 괜히 내가 서운해지기도 했다. 여튼간에 재계약 협상은 잘 안되었고, 결국 나는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요즘 이사집을 구하고 있다. 구경 다니는 집들 모두 여기보다는 상태가 낫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 분명 더 나은 집으로 갈 것 같다. 근방으로 갈 테니 사실 삶의 반경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나도 묵은 짐을 덜어낼 때도 되었고,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왠지 이 집 침대에 누워서 보이던 나무와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낮이 되면 아주 살짝 들어오는 나무 사이의 볕이 왠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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