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kg이 넘는 거구의 말이 수술대에 눕혀져서 큰 수술을 하고 있다. 나는 말의 머리 옆에 앉아서 전신흡입마취를 담당하고 있다. 갑자기 말이 다리를 막 움직인다. 일대 수술방이 아수라장이 된다. 아무리 약을 주입해도 말은 더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말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노려본다. 으악... 눈을 뜨니 꿈이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입사 초기에 종종 꾸던 꿈이었다. 때는 2005년, 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경마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일을 했으며, 그 중에서 수술실에서의 나의 첫 역할은 말의 마취하는 선생님의 보조 역할이었다. 마취자는 말에게 진정제 약물을 투약한 후, 전마취실로 말을 입장시키고 전마취제 주사로 말을 눕게 한다. 그 후 재빠르게 기관 튜브를 장착하고 네 다리에 호블을 건 후, 천장 위의 레일를 이용하여 네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채 말은 수술실로 입장한다. 그 후 전신 호흡 마취기를 걸고 마취가 안정되면 수술이 시작된다.
마취 선생님이 하는 역할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말 옆에 가만히 앉아서 간간히 마취 농도를 조절하며 기록지를 적는 선생님은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내가 그 역할을 맡고 나서야 깨달았다. 얼마나 그게 피말리는 일인지를. 자꾸만 혈압이 스물스물 올라가는 말, 안구진탕이 갑자기 오는 말, 혈압 조절이 안되는 말, 뭔가 새는 것만 같은 마취기, 등등 변수는 너무 많았다. 고수는 그 변수에 능숙하게 대처하지만, 초보자였던 나는 수술 시간동안 내 심박수와 혈압만 올려대며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혹여나 말이 수술 중에 말이 깨서 마구 움직일까봐 그게 가장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술이 끝났는데 가장 녹초가 된 건 말도 아니고, 수술 선생님도 아니고, 바로 나였다.
다행히 꿈처럼 말이 난동 부리며 벌떡 일어난 적은 당연히 지금껏 없다. 많은 선배님들의 노하우와, 나의 경험 들을 이제는 후배들이 잘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 마취가 생각대로 안될 때 후배 수의사들의 멘붕 상태를 보면 그 때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지금도 수술실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마취가 잘 된 말’이요, 가장 무서운 것은 ‘마취가 안된 말’이다. 마취만 잘되면 평화로운 우리 말 동물병원 수술방을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수술방에서 우리 모두를 살리는 사람은 ‘마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오늘도 수술 전 그에게 잘 보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