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입원실에 손님 한 마리만 우두커니 마방을 지키고 있다. 관절 안에 있던 작은 뼈조각을 빼는 수술을 했던 건강한 어린 말이다. 먹고 싸는데 이상 없고 주사 맞고 붕대 갈면서 그저 마방에서 며칠만 잘 쉬기만 하면 되는 말이다 보니 꽤나 심심해 보인다.
평소에 혈기왕성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혼자 있는 게 낯설어서 그런 건지, 방 안을 끊임없이 뺑뺑 돌고 창 밖을 하염없이 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히힝거리며 애타게 누군가를 부르는 듯하는 모습이 다소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 아마도 이 녀석에게 유일한 위안이 될 일이란 삼시세끼 끼니일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들고 오는 그 순간 말은 세상에서 가장 활발해진다. 조용한 마방에서 풀을 코로 휘적이며 우적우적 큰 이빨로 풀을 씹는 그 소리가 그저 좋다. ASMR로 완벽하다. 보들보들한 코주둥이로 냄새를 킁킁 맡다가 사료와 건초를 먼저 건드려보고, 이내 입 안으로 집어넣은 다음 넓적한 어금니로 와그작와그작 씹어대는 그 소리. 경쾌한 귀의 움직임과 집중하는 땡글한 눈과 함께 부지런히 먹어대는 그 입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머릿속을 괴롭히던 모든 회로가 정지한다.
나는 이걸 ’말멍‘ 이라 칭한다.
세상 맛없어 보이는 풀때기와 사료를 세상 맛나게 주워 담아 먹고 있는 녀석의 입을 보면, 풀 냄새와 사료 냄새 향기가 제법 좋다는 착각까지 든다. 그렇게 한참을 '말멍'하며 줄어드는 사료를 하염없이 보다 보니, 옛날 옛적 내 아이가 분유통 붙잡고 눈 부릅뜨며 꿀꺼덕 꿀꺼덕 넘기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 기억회로가 오랜만에 돌아갔다.
맞아. 그땐 그랬지. 잘 먹는 것. 건강히 잘 먹는 것 만으로 우리 모두는 사랑을 받고 살았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잘 먹고 무탈한 것만큼 흐뭇한 게 있을까. 불멍 부럽지 않은 말멍을 하다가 시간이 정지해 버린 순간이었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세상 모든 사람이 힐링을 갈구하는 시대다. 말이라는 녀석이 요물딱지게 천천히 먹는 소리에 하염없이 마음이 배불러지고 편안해지는 말멍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21년 작성. 퇴고 후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