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Nov 06. 2023

뮤지컬 쇼맨 - 어느 독재자의 네번째 배우

두번째 후기

작년 이맘쯤 네이버 생중계로 뮤지컬 무료중계를 한다는 알림소리에, 마침 할일 없던 나는 우연히 누워서 휴대폰으로 극을 보기 시작했다. 보는 중에 아이들도 떠들고 남편도 오가고 하는 아주 산만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내 모든 소음이 안들렸다. 내용은 정말 깊고 마음을 후며팠다. 조그만 핸드폰으로 보는데도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후 1년 내내 본공연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이번 재연에 서울 정동극장에 가서 실제로 관극을 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가보는 극장, 처음 실제로 눈에 담는 극, 처음 보는 악기 연주자들과트럼펫 등의 악기를 마주보며 시작을 기다리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주인공 네불라는 그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였다. 자신이 남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고 아빠가 처음으로 웃으며 칭찬해줄 때, 네불라에게 각인이 되었다. ‘내가 남을 흉내내는 모습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구나.’


또다른 주인공 입양아 수아는 양부모에게 ‘굿걸’이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선, 양부모의 장애인 친딸을 잘 돌봐주는 업무를 해야 했다. ‘내가 이 아이를 돌봐줘야 칭찬이 돌아오는구나.’ 라는 각인이 되었다.


둘다 시작은 사랑받기 위해서였는데, 지나고 보니,네불라는 국가 독재자의 대역 역할을 하며 젊은 시절 죄에 가담했다. 그리고 수아는 장애인 동생에게 소홀하다고 꾸짖는 부모의 말에 영원히 집을 나온 후 과거 삶을 모조리 외면했다.


나이가 든 네불라와 수아는 그런 과거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다. 하지만 직시할 수가 없었다. 그저 외면했다. 기억하기가 고통스러워서 과거의 자신의 실수와 애써 마주하지 않는다. 판단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


과거의 내 고통을 외면하면 결국 사라질까? 내 슬픔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작아질까? 이 극은 결국 그런 나조차도 참아내고, 오히려 직시해야 한다고 나긋이 은유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도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간다며 주위를 환기하게 해준다.


내 아픔을 직시하는 용기를 내면, 남의 아픔도 보인다. ‘그냥 살면 안돼?’라고 저항하지만, 그럼에도 저 깊은 곳의 나의 죄책감과 회한의 감정들을 애써 찾아내어 마주해야 한다. 과거의 나를 죽이고 싶더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도돌이표. 내 키만큼 깊은 바다에 잠기지 않기 위해 온 힘으로 뛰어오르는 네불라와 다른 이들의 점프를 마지막으로 극은 끝난다. 나대로 살지 못했음을 직시하는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것. 결국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하기 전, 정말 내가 모르는 건지, 알면서 떠올리기 두려워서 피하는 것은 없는지, 그렇다면 과거의 무엇부터 꼬리를 물었던 건지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사유의 단계가 없다면 결국 같은 원을 계속 돌기만 하고 출구를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감이다. 극을 보며 오열하는 나와 다른 관객 모두 네불라와 수아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다는 반증이다. 다 똑같다. 나 역시 과거 사랑에 목말랐다. 무서운 부모 앞에서 내 의견 표현에 서툴렀다. 먼저 감정을 표현하는게 어렵다. 그런 성장으로 인해 지금도 버림받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발작버튼을 가지고 있었다. 늘 두렵지만 안두려운 척 하며 과거를 외면하고 지우기에 급급한 용기없던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 각자의 키만큼 높은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삶이었다는게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이제 나도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감정도 있다. 그러니 이젠 스스로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해보려 숨을 다져본다. 정작 두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커다란 공명을 주었던 참 좋은 창작극이다. 극이 끝나고 정동극장을 나와 조용한 덕수궁 돌벽을 붙들고 흐느끼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에, 나도 빗장을 열고 글로 마음을 풀어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