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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Dec 15. 2020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명에 관한 이야기     


공연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집중의 밀도 있는 순간.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그때그때 만의 공기가 있다. 그 공기에는  배우 한 명 관객 한 명 한 명의 눈과 마음과 열정과 공기와 소리와 조합된, 결코 재현할 수 없는 그때 만의 잊지 못할 향기가 난다. 나는 그 향기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그 잔향을 기억하고 보듬으며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하지만, 한정된 인간의 기억력은 기록과 영상과 사진으로 간직하려 아무리 버둥거려도 결국 연해지며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작은 별처럼 남는다.


그 작은 별이 대학로에서 우리 집 안방까지 귀하게 나서셨는데, 내가 어찌 버선발로 뛰어나가 모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와 고양이의 시간
 


주인만 바라보는 멍뭉이 개 랩터와, 허세 가득한 아기 고양이 플루토의 이야기.

시놉시스만 보면 왠지 말랑말랑할 것 같고, 힐링일 것 같고, 완만하고 따뜻한 가족 영화 같은 느낌일 것 같다.


하지만 극은 생각보다 강렬하고, 독하고, 불편하고, 독특하고, 기발하다. 그런데 다 보면 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길가던 댕냥이들 한번 더 만져주고 안아주고 싶다.  

출처: 티켓링크, 개와 고양이의 시간 공식 트위터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온라인 생중계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목소리를 미세하게 잘 잡아서 표현해주는 음향이 완벽했고, 두 배우의 노련하고 디테일한 연기와 목소리의 멋진 합이 극을 풍부하게 했으며, 때로는 클로즈업으로 소품까지 볼 수 있고 때로는 뒤에서 봐야 알 수 있는 세심한 무대 조명까지 챙겨볼 수 있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새로운 시도가 많다. 카메라를 활용한 댕냥이의 시점으로 세상이 보이며, 댕냥이의 시점으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최근 관극을 취소당해 시무룩해진 관객에게 이런 고퀄의 생중계를 시도해준 분들께, 커튼콜 때 느낄 수 있는 그 흥분의 물개 박수를 보낸다.


덕분에 직관만이 곧 뮤지컬이다라는 내가, 안방 1열에서 눈이 뻘게져서 기립하여 레전 대레전을 외쳐댔다.


작은 별이 빛나는 대왕별 되어 가슴에 내리 꽂혀서 벅찬 나의 이 마음 가득 담은 채로 플루토를 한없이 그릉그릉 하게 쓰다듬고 만져주고 싶고, 랩터에게 프리스비를 푸릇한 공원에서 종일 던져주고 싶다.  



* 생중계 총 3회: 12/14(월), 12/21(월), 12/28(월) 20:00

* 구매처: 티켓링크


http://www.ticketlink.co.kr/product/33665


공연을 다 보고, 어렸을 적 내 다리 옆에 항상 붙어서 잠을 자던 초롱이가 너무나 생각나서, 한참을 떠올리고 뒤져보다가가 중학교 그 시절 일기의 일부를 붙여본다.   


"난 동물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좋은가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못하겠다. 길 가다가 아장거리는 아기 보고 귀엽다면서 다가갈 때, 누군가가 왜 귀엽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대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그냥 좋다. 그냥 좋을 뿐이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적부터, 내가 태어나기도 전일 때부터 우리 집이 동물과 함께 살아서 일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꼬마였을 적의 사진에, 내가 울 집 바둑이 등에 타고 찍은 사진이 적잖게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기억이 나던 어린 시절에도 생각나던 울 집 동물들은 많다. 나비, 누렁이. 흰둥이, 검둥이, 초롱이, 다롱이, 여러 십자매들.. 그 녀석들이랑 살다가 나도 모르게 그 종족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동물은..  특히 개는,, 진정한 친구인 것 같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그들은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파악만 하면 그 충성심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 물론 tv에 나왔던 백구 같은 명견이 아니고, 허구한 날 낮잠만 자는 똥개라도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지, 그 충성심  하나는 개라면 타고 난다.


일심. 하나를 향한 마음. 그건 웬만한 사람 아니면 갖기 힘든 정신이다.


그런데 개들은,, 바보 같은 개들은,, 평생 한 주인을 섬긴다. 주인이 오면 기절할 세라 눈에 빛을 내며 꼬리를 흔들어 대고, 주인이 패든, 욕지거리를 하든, 밥을 안 주든 주인이 오면 그저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개가 좋다. 좋아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들에게 보답을 하는 것 같다. 생긴 것도 참 맘에 들게 생겼다.


까만  눈, 가끔씩 축축해지는 녀석들의 눈을 보면 괜히 맘이 아리기도 하고, 헥헥거리는 그 혀와 약간 올라간 입꼬리는, 흡사 천연덕스러운  장난꾸러기 같기까지 하다. 개털이라고 천대받는 녀석의 털은, 쓰다듬으면 그 느낌이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할 수가 없고, 네 발로 떡  버티고 있는 자태는, 두발로 서서 다니는 인간보다 더 겸손해 보여서인지 더욱 솔직하고 고결하게 보인다 하면 내 억지일까?


녀석의  꼬리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살랑살랑 흔드는 모양은 얌체 같은 아가씨 같고 밑으로 쑥 내려간 모양은 겁쟁이 소년 같고 엄청난  에너지로 흔들어 대는 모양은 귀여운 꼬맹이들 같은 게 꼬리 하나가 여러 표현을 대신하는 건 개들만의 특권인 듯싶다.


지금은  내가 몰라서 그렇지, 다른 동물도 알고 보면 각각의 매력이 있을 거라는 걸 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키우는 식물도 주인의  감촉을 느낀다 하고, 하다못해 뱀도 주인을 알아본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생명 간의 정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동물이 좋다. 그래서 난 동물과 평생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겉으로는 못 느낄지 몰라도, 내가 녀석들을 아낀 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날이 올 거다.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거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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