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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Nov 26. 2023

(연재-1) 짝짓기 게임이 늘 두려웠다.

한 달 전 즈음 승진공고 찌라시 카톡을 동기가 보내줬다. ㅇ일 임용 예정이라는 글자를 읽는 순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짧은 순간인데 공포감을 느꼈다. 내 몸에 병이 생겼나 싶었다. 집 앞 놀이터에 앉아서 한숨을 백번쯤 쉬다가 집에 들어갔다.


이건 일단 덮는다고, 생각을 고쳐먹자고 다짐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괴롭지만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었다. 나는 왜 이리 겉과 속이 다르게 연연하는가? 떨어지면 나 정말 죽나?


부끄럽다? 자존심 상한다? 피해주기 싫다? 인정 못 받는 게 억울하다? 연봉이 못 오른다?.. 겉핥기 정도는 되는데 결국 그게 이 심장조임의 원인은 아니다. 이번에 떨어지는 것은, 사실상 내가 ‘이 조직에서 왕따임을 인증받는 것이다.’라는 내 관념을 스스로 아직 깨지 못한다는 게 사실 가장 핵심이었다.


짝짓기 게임이 늘 두려웠다. 다 대충 친한 줄 알았는데 정말 내 편은 없다는 공포감이 가장 컸다. 대학 때까지 나는 최종 내 짝이 늘 애매했다. 마지막 국가고시를 보기 전 호텔에 들어가기 위해서 2인 1 실용 짝을 만들어야 했는데, 너무 두려웠다. 아무도 나랑 같이 하자고 안 할까 봐. 딱히 찐친을 못 만드는 게 결국 매력 없는 내 탓 같았다.


어차피 진급은 내 소속의 최상위자가 누군가를 선택하는 룰이기에 그게 난 두렵다. 같이 한 세계인 것처럼 전체 이메일을 돌려가며 함께 떠드는 것 같지만, 결국 최상위자는 나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내 숨을 조이게 했다.


작년 이맘때 이젠 정말 내 차례인 줄만 알았던 나는 떨어졌고 나는 밀렸다. 그전에도 여러 번 떨어졌지만 특히 작년에 나는 충격이 컸다. 왜냐하면 그냥 학년 올라가듯 차례로 올라갈 것이라는 그간의 관습의 이어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며 살았기에 당당하다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도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처절히 살아낸 줄 인식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공정했다. 그런데 그땐 빌어멀을 나의 ‘왕따 뇌구조’가 내 객관성을 잃게 했다. 내기 선택받지 못하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선 그어 놓았음이 최종 확정 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짝짓기 게임에서 마지막 길 잃은 자일 것만 같다.


사실 이 게임 자체를 내려놓으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난 선택 못 받는 게 가장 두려운 사람인데 어떻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담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소속감을 버릴 수 있을까. 인간이 소속감 없이 살 수 있을까. 나보고 이제 욕심을 버리라고 조언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수 있는지 방법이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치유가 될 텐데.


오늘 아침 갑자기 심장이 조여지고 숨이 안 쉬어지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정말 문제다. 사실 12년간의 만년 과장 생활은 좀 길었다. 그간 매년 합격자 명단을 보며 어디에도 없던 내 이름을 확인하며, 오랜 기간 동안 내 몸에 독이 쌓였나 보다.


이제 마지노선이 왔고, 내 몸은 반응했다. 내가 더 잠식당하기 전에 나는 정말 숨을 좀 쉬고 싶었다. 어디라도 소속되고 싶었다. 나도 제발 남들처럼 선택받고 싶었다. 나는 짝짓기 게임에 늘 두려웠던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기어코 찾아내었고, 용기 내서 똑바로 마주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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