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을 보면 수상자는 한결같이 감사한 이름을 끝도 없이 나열한다. 왠지 그게 나는 일종의 가식과 자기 포장 같다고 생각했다.
발표 당일이 되자 나는 잦아든 날씨처럼 이상하게 평온해졌다. 오히려 주위 동료들이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발표시간인 저녁이 다가오자 나도 슬슬 긴장을 탔다. 결국 시간이 되었고, 모두가 주시하는 명단이 떴다. 나는 차마 내 손으로 클릭해 보지를 못했다.
갑자기 카톡부터 전화기가 쉴 새 없이 막 울리기 시작했다. 감이 왔다. 작년 발표땐 정말 쥐 죽은 듯이 전화기가 조용해서, 오히려 나는 공지가 뜬 지도 모르고 있다가 몇 시간 뒤에야 뒤늦게 낙방을 알았더랬다. 오늘은 작년과 전화기의 온도가 분명 달랐다.
‘붙었나 보다..’
동료가 명단을 열고 눈으로 확인해 줬다. 5수 끝에 이번 명단엔 처음으로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쉴 새 없이 연락을 주셨다. 환호에도 얼떨떨했다. 많은 분들이 그간 마음고생하느라 참 애썼다고 말해줬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과 한참 속을 풀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같이 긴장해 준 양가 가족에게 연락을 드렸다. 한바탕 왁자지껄이 끝나고 모두가 잠든 밤이 되었다. 그제야 못다 한 답장을 다 보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 밀려왔다.
만약 내가 연말 시상대에 나갔다면, 나 역시도 많은 이름들을 길게 나열했을 것 같다. 연말 연예인 수상자들의 감사 인사는 인맥 자랑이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이 결과는 내가 한 게 아니고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말이 가식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무척 협소한 인간관계의 나조차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조력과 응원이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따뜻함을 오늘은 피부로 느낄 수 있고, 감사를 바로 표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12년 만에 김 과장의 옷을 벗게 되었다. 여전히 얼떨떨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무엇보다 매년 연말마다 이 고생을 해가며 그 날것의 히스테리를 들어준 남편에게 가장 미안하고 고맙다.
친구가 보내준 ‘올해 괴롭던 일이 끝나고 꽃길만 펼쳐진다’ 고 적혀있었던 꽃띠의 운세는 정말 맞았다. 그리고 운세에 적힌 ‘나를 크게 도와준다는 주위의 귀인’은 알고 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오늘의 이 공기와, 이 기분이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무엇보다 오늘을 기점으로, 짝짓기 게임이 무서웠던 나의 내면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선, 그 아이의 뿌리 깊은 큰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