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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Dec 04. 2023

글쓰기의 확장성을 믿어보기로 한다.

10년도 넘게 못 보던 사람을 다시 만날 땐 똑바로 눈을 보기 다소 민망할 때가 있다. 며칠 전이 딱 그랬다. 입사 후 10년이 넘게 못맜났던 입사 동기들을 모임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다들 머리숱이 하얘지고, 얼굴살도 빠지고, 차림새도 많이 편해졌다. 그들도 나를 보고 그렇게 속으로 세월 참 많이 흘렀구나 하고 생각하며 놀라지 않은 척 눈을 마주 보며 웃었겠지.


그중 친한 동료와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보다 몇 년은 일찍 진급한 동기들이다. 나는 얼마 전 드디어 11년 만에 과장 딱지를 뗐다. 그간 수차례 승진에 누락되어 느꼈던 불안과 고군분투 과정을 한참 풀었다. 동료가 말했다. "너 무슨 서울대 합격했냐. 그게 뭐라고 그리 애를 썼어. 정말 짠하다. 이제 다 잊고 가장 고생한 가족한테 잘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서울대 박사를 졸업했는데, 졸업은 승진만큼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력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진급은 정치 한복판에서 간택당해야 하니, 관계가 항상 어려운 나에게 돌아오는 건 좌절일 뿐이었다.


동료의 한마디에, 나는 정작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 양식장 속에서 우리는 다들 천천히 무력해지며 썩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정치와 사회성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상위자의 간택을 가다리는 삶이 과연 올바른 성장 구조인가? 성인이니깐 감당해야 하는 삶의 일부분일까?


신입사원일 때는 모두 밝고 포부 넘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 안에서는 양식장에서의 고기밥에나 연연하는 무력한 생선들이 되었다. 사실 다른 직장이라 해도 심하다면 더 심할 것이고, 누구나 직장 속에서 사연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을 안다. 그래서 더 답답해진다. 내가 추앙하는 사람들은 희한하게 대부분 직장인을 탈출하고 있다. 내가 듣는 유튜브 속 자유인들은 돈 버는 법과 부자 마인드를 설명한다. 돈 되는 플로우를 설명한다.


그곳이 정말 길일까? 어쩌면 이 양식장은 사실 그물망이 없었는데도, 나는 그저 고기밥만 기다리며 감히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며칠 전 모임에서 정지우 작가님은 글쓰기의 확장성에

대해 말했다. 글을 통해 정말 다양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하고, 결국 더 많은 일들이 생기며 느끼는

삶의 기쁨과 의미를 이야기했다. ‘확장성’이라는 이야기가 갑자기 머리에 냅다 꽂혔다. 틀 속에서 하루종일 고기밥만 떠올려야 하는게 질려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머릿속을 환기해서 ‘글’을 통해 찐 동료와 세상을 만나고 싶다고 느꼈다.


그간, 이 양식장의 탈출방법은 오로지 ‘돈’ 뿐이다라는 내 생각의 구조가 오히려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니 돈을 굴려 어서 자유를 얻고 싶었다. 탈출을 갈망하다가도 그래도 책임질 가족이 있는데, 당장 최소한 대출금은 값을 만큼의 매달의 붕어밥이 결국 필요한 걸 바로 깨닫는다. 사실 유튜버들이 그렇게 외치는 월 천만 원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줄을 모른다. 그러니, 또 정처 없이 근처를 맴돌며 또 다른 고기밥이 나올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똑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하지만, 글로 일단 나를 확장하자는 결심과 실행은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할만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글이란 소중한 날개이자 비밀스러운 내 무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조금 더 진정성 있게 나를 확장하고 싶어졌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리고 싶어졌다. 다른 무엇보다 그걸로 나를 기꺼이 평가받고 싶다. 이제는 하염없이 간택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내 편을 찾아가고 싶다. 고기밥이 이제 맛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졌다.


글로 던진 내 sos 신호를 누군가 보고, 비슷한 신념으로 끌어당기며 연대하고 또 같이 걸어가고 싶다. 그렇게 내 삶의 이유, 세상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부단히 적어가며 그 길을 끝까지 놓지 않고 항해하다 보면, 혹시나 한 달에 천만 원 버는 섬에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유를 쫓다가 돈이 오든, 돈을 쫓다가 자유가 오든 뭐가 먼저인지 아직도 난 모르겠다. 뭐가 먼저이면 어떤가. 일단 sos를 계속 날려보면 뭐라도 먼저 얻어걸리지 않을까.


그저 내 삶의 끝까지 글을 붙잡고 살다 보면, 최소한 ‘사유하는’ 팔팔한 물고기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기밥은 이제 더 이상 맛대가리 없다는 걸 자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월천섬’은 자유를 위한 필요요소이기에 멋져 보였던 건데, 글로 이미 자유를 얻으면 오히려 더 잘된 거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쓰며, 세상에 나를 확장하고자 하는 sos를 지속적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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