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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있어야지

by 말자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설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경험 많은 진료진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물과 재료라도, 합병증은 발생한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의 수업 시작 후 첫마디였다. 안그래도 입원말의 비보를 수업 직전 전해듯고 온갖 후회와 자책으로 마음이 흙탕물처럼 요동치던 터라, 강의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연자의 의외의 첫마디를 들으니 주위가 다 사라지고 마치 나에게 하는 것 처럼 들렸다.


“당신이 선택하고 시행한 결과가 당연히 틀릴 수 있다. 당신의 명성은 떨어지고, 환자는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듣다가 울어버렸다. 생전 처음 가본 장소에서 난생 처음 만난 강연자의 첫마디는 그 무엇보다 강력히 나를 심폐소생하듯 위로해주고 있었다.


강연자의 분야는 말 정형외과다. 말의 경우, 사실 다리뼈가 심하게 부러진 걸 수술해서 붙인다는 건 어렵고 고난한 역행의 길이다. 모든 사람이 반대한다. 굳이? 굳이 그 고생해서 고쳐도 합병증이 너무 잘 발생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캐스트로 유지하는 그 험난한 회복 과정을 거쳐도 결국 장애가 남는다면 ‘사람을 태우는 용도의 말’로 쓸 수가 없다.


아무 활용도 못하고 살아있는 말을 영원히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렇기에 말 정형외과 수술은 희박한 ‘성공’ 까지 이루지 못하면 무조건 손해보는 게임이다. 다리뼈가 아작났다고 생명이 위급한건 아니지만, 그걸 완벽히 고쳐보겠다고 애쓰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유는 사실 결국 말에게 쓰임을 다시 부여해서 살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주로 죽기 직전의 응급실 상황 같은 말을 보는 사람이다. 누가 봐도 다 급하니 일단 살려달라고 한다. 강연자는 무참히 부러진 다리뼈에 나사를 박아 무너진 집을 재건하듯 고치는 사람이다. 그는 온갖 합병증과 진료비 누적, 예후 불량, 심지어 본인의 평판이 떨어질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희박한 확률을 고집하며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오히려 나에게 위로를 건넨 날이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빈 입원마방이 오늘 유난히 더 허전해보인다. 그래도 어쩌겠나.다시 입꼬리를 억지로라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