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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pr 10. 2024

육아 OO , 땡땡이 뭐길래


‘그럼에도 육아’라는 책을 읽고 있다. ‘육아땡땡’이라는 말을 누가 한다면 땡땡을 다들 뭐라고 상상하며 읽을까? 여러 매체나 주위의 분위기를 보면 천국보다는 지옥이나 전쟁이라는 용어에 더 익숙해진 게 사실이다.


나도 그 땡땡시절 절박해진 나만의 시간을 꿈꾸었다. 퇴근하면 놀이터 직행 후, 씻기고 밥 주고 집을 치우다 눈뜨면 또 출근하는 그 시절, 나는 퇴근 후 운동이라도 할 수 있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그 땡땡시절이 피곤의 절정을 이루던 어느 정점을 지나더니, 요즘은 하나둘 내가 꿈꾸던 그 시간이 시나브로 확보가 되고 있다.  요즘 나는 사춘기 아이 둘과 살고 있다. 퇴근하면 직행하던 놀이터도 이미 아이들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목욕도 당연히 이제 내가 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요즘은 학원 시간이 다들 저녁이어서, 퇴근 후 나 혼자 한두 시간 있다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조용한 저녁이 더 많다.


바로 내가 꿈꾸던 나만의 시간이 저녁마다 온다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그 자유시간에 나는 운동도 하고, 나를 가꾸며 즐겁게 지내고 있나? 사실 아니다. 쪼개서라도 만들고 싶었던 그 시간을, 나는 뭐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똑같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문득 발견했다.


아이랑 저녁에 했던 배드민턴의 숨가쁨과 놀이터 의자에서 마냥 아이가 지치기를 기다렸던 그 알싸한 저녁 공기가 이젠 그리움이 되었다. 그 시절은 사진도 넘쳐난다. 하지만 지금은 네 가족이 찍은 사진은 연중행사며, 사진을 몰래라도 찍었다가는 바로 손절당할 위험에 처해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라도 말 걸 구석을 찾는다. 나만의 시간이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나는 아이들의 삶을 탐구하며 질척댄다.


어제저녁은 딸이 친구랑 영상통화하면서 편의점에 간다고 해서, 밤길 위험하다는 핑계로 괜히 같이 따라 나갔다 왔다. 연예인 이야기만 쏟아내는데 이거라도 대꾸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최선을 다해 리액션하느라 애썼다. (물론 로봇 반응이었겠지만)


아들은 갑자기 소프트렌즈를 끼고 싶다고 해서, 반신반의하며 안경집에 같이 가서 상담을 받고 왔다. 세상 귀차니스트가 갑자기 렌즈를 끼고 싶다는 게 웬 말인가 놀랐는데, 알고 보니 ‘넌 안경 벗은 게 훨씬 나아.’라는 여학생 한마디에 눈알을 혹사시키겠다는 용기까지 생겼던 것이었다. 더 캐묻고 싶었지만 쿨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정신줄을 붙들고 참았다. (사실 더 물었다가는 빛의 속도로 도망갈 것을 안다.)


뭐 이렇게 예전처럼 부모의 체력을 가는 사랑보다는, 다소 주고받는 사랑을 확인할 길 없는 사춘기 아이 엄마로서 또 다른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며 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그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육아땡땡 후에 조금만 버티면 드디어 너의 시간이 온다라고만 세상 사람들이 말했다. 그런 주위의 말과 달리, 나는 여전히 막연한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아이들 근처에서 서성이며 그 부대낌을 갈구하고 있다.


어른들은 그런다. 자녀 키우는 건 끝이 없다고. 내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라고. 그러고 보면 내 부모님도 여전히 내 생각을 하고 있고, 나 역시 내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되더라도 당연히 그게 내 혈연관계의 엔딩은 아닐 것 같다.


교복을 다려주고, 라이딩 운전수가 되고, 여전히 맛없는 내 밥실력을 올리고자 마트에서 뭐 살지 고민하고, 이차성징 한복판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속에서 함께 당황하며 이것저것 밤마다 검색해 보면서 나는 여전히 끝이 아득한 이 시절을 살아간다.


끝이란 게 정녕 있을까 싶다. 계절마다 볼거리가 다르듯 육아는 계속 변할 뿐이지 끝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육아 땡땡에서 땡땡이 도대체 뭔지는 남 이야기로 미리 재단할 필요도, 겁먹을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그건 세상이 아닌 나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하며, 바로 거기에 내 남은 인생 전체도 함께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전쟁터인지 꽃길인지는 내 마음이 선택할 일이다. 내 인생의 방향키에서 육아는 방해물도 아니고, 부스터도 아니다. 그냥 죽을 때까지 이미 내 일부였던 것이다.


#숨쉬듯글쓰기 #말작가 #찬란 #정지우작가님신간 #그럼에도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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