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Apr 01. 2024

나는 4월이 항상 두렵다

나는 항상 4월이 두렵다. 그리고 10월은 꿈꾼다. 그건 나만의 말도 안 되는 미신이다. 이 마음을 고치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벚꽃이 만개하고 예쁜 봄옷을 입어도 좋은 4월 첫날 달력을 넘길 때 나는 솔직히 좀 두렵다. 반면, 10월은 매일매일 기대하는 몽글한 가을 하늘의 꿈으로 존재한다.


수년 전 4월에 나는 많이 아팠다. 그 시절의 전부였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 시절의 또 다른 전부였던 꿈에서도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꿈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지며 나는 꽤 오래 침잠했다. 회복은 되지 않았고 여전히 잔해는 마음속 깊은 찌꺼기로 항상 남아있다. 희한한 일은 그 이듬해 4월에도 비슷한 큰일이 생겼고, 또 그다음 해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그 이후 나는 4월이 좀 싫어졌다. 계절 탓이 절대 아닐 텐데 철마다 피어나는 벚꽃이 죄가 없을 텐데도 나는 그 탓을 계절에 뒤집어 씌웠다. 그냥 그렇게 필터를 씌워버려리며 4월을 저주해야 내 불운이 정당해지는 것 같았다. ‘올해 내 띠가 삼재야 그런 거였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뭔가 이상하다. 회색 필터링처럼 겨울부터 봄 내내 흐리고 비가 왔던 날씨가 오늘따라 갑자기 개었다. 달력을 보니 4월 1일이다.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좀 더 자려고 누우려다가 밖을 보니 담벼락에 흘러들어온 꽃가지를 발견했다.


흠 그럼 해가 꽤 오랜만에 났으니 커피나 좀 사 오고 다시 누워볼까 싶어서, 아이 등굣길에 주섬주섬 따라 나갔다. 씻지 않고 부은 얼굴로, 여전히 시커먼 옷을 위아래 둘러 입고 커피집에 직행했다. 사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커피 쿠폰이 만료 직전이라 그 의무감으로 겨우 겨우 내 발걸음을 떼게 한 것도 무시 못하겠다.


커다랗고 달달한 선물 받은 커피를 받고 창가에 앉았다. 햇살은 너무나 따사롭고 이제야 사방의 벚꽃잔치가 눈에 보인다. 같이 써요 1기 동기들의 마지막 글들을 보며 슬며시 웃고 있다가 댓글을 달며 인사를 하는데 마지막 안녕이 서운하다기보단 굉장한 축제 같았다. 마지막 안녕이 이렇게 따뜻하고 깔끔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의 이 모든 산뜻한 상황과 감정은 그간 내가 여겼던 4월의 느낌이 전혀 아니다. 옷만 까맣지 내 마음은 뭔가 변했다. 나도 이제 그만 내 묵은 감정과 안녕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 돌아왔는데 나 혼자 억지로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이별하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아픈 4월이, 어쩌면 올해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살짝 든다.  


뭐가 나를 끌어내고 지금 이곳에 앉아서 이 글을 쓰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창밖의 벚꽃인지, 친구의 커피선물인지, 글벗들의 마지막 글의 감동인지, 2기 책 프로젝트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공교롭게 그것이 4월 첫날에 왔고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느낌으로 온 동네 벚꽃을 찬찬히 구경하며 학교 담벼락 속 아이들 목소리를 벗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너를 맞이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탁의 행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