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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싶은 마음

자본주의 피터팬

by 말자까

동종업계에서 빛나고 있는 몇 안되는 걸들이 모여 술 토크를 했다. 흔치 않은 기회의 귀한 시간이었다. 이야기가 깊어지며 각자의 취미를 물어보다, 글쓰기 이야기에 이르렀다. 난 출간 스토리를 이야기하다가, 현재 진행 중인 논문동화 시놉까지 신나게 늘어놓았다.


놀라운 건 다들 출간에 어렴풋한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 진료 에피소드와 퇴역하는 말이야기, 애꾸눈을 가진 말을 싫어하지 말라는 이야기 등 진지한 시놉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들은 출간방법을 물어보고, 일러스트 그리는 법을 궁금해했고 북투어를 하며 살고 싶다 했다. 글은 쓰고 싶은데 시간과 엄두가 안 난다 했다. 그동안 내 부캐인 글 이야기는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썩 이질감 있는 주제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렇게 같은 마음이었는지 너무나 신기했다. 왠지 그 순간 뭔가 환해지며, 나 포함 세명의 피터팬들 집합소 같이 느껴졌다.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고 공감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내 경험상 이런 유형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많았다. 이런 유형의 여자는 꿈을 쫒는다. 이상을 그린다.


물론 다른 유형의 여자들도 많다. 다른 유형의 사람은 세상이 궁금해하는 걸 가장 중요시한다. 그걸 끝까지 파서 상품화한 후 명석하게 판다. 지식이든 물건이든 그걸 팔고, 책은 유명세를 위한 작가 타이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즉, 꿈이 부와 행복에 있다.


그런데, 피터팬들도 자본주의 세상에 산다. 당연히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역시 궁극으로는 부와 행복을 꿈꾼다. 왠지 구름 같은 행복과 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피터팬에게 욕심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욕심쟁이 피터팬에게 뭘 포기하라고 해야 할까? 너의 꿈을? 너의 부를? 너의 행복을?


이런 고뇌는 수백 년 전의 역사 속 문인들, 예술가들, 혹은 어느 시골의 가난한 한 소년에게도 고민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역시 우리 모두는 선택의 상황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본성과 타협의 어딘가에서 멈춰 서서 생을 살다 언젠가 죽는 거겠지.


그 많은 사람들 중 나 역시 별나지 않고 평범한 하나의 모래라는 것. 정답은 모르지만 나 역시 그 중 하나로서 어딘가에 서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는게, 좀 위안이라면 위안이 되는 밤이었다. 우리는 말에게 적용할 대박 발명 아이템을 깔깔거리며 상상했다. 이걸로 대박 쳐서 한몫 챙겨 은퇴하자고 말하며 파이팅을 외치며 헤어졌다.


피터팬들도 사실은 안다. 이 사회에서의 내 위치와 그 한계를. 그리고 포기해야만 할 일을. 그래도 난 우리의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여전히 이들의 기발한 발명품 상상에 피식 웃음을 지었고, 그 기억이 참 오래 갔다.


오래간만에 신나는 대화 속에서, 오래간만에 편하게 잠이 솔솔 들며 내일의 힘을 충전했다. 이 도심 곳곳에 살고 있는, 글쓰기를 마음에 품고 사는 꿈 꾸는 또다른 피터팬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당신들의 대박 드림을 글로 만나고, 공감하고 궁디 팡팡 우쭈쭈 하며 살아가고 싶다.


얼핏 보면 모두가 똑같은 것을 추구하는 회색 세상 같으나, 생각보다 자본주의 피터팬들은 온세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만의 책을 마음에 품고, 그걸로 무형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발산하며 이 세상의 숨은 기저로 작용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단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각자만의 부와 꿈, 그리고 행복이 뒤엉켜있을 것이며, 그 지점은 모두가 다르기에, 스스로 정해야만 비로소 도달하는 것 같다. 그 지점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찾아낸다면, 분명 그 곳에는 자본주의 속에서 팽팽 날아다니는 피터팬 고유의 행복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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