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다 큰 성인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춘기 두 명이 서식하고 있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과도한 관심이며, 그들이 촉각을 세우는 것은 친구들이다. 창조주의 모든 질문이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잔소리로 필터링돼서 들릴 뿐이다. 심지어 사랑한다는 소리도 그들에게는 백색소음처럼 귀를 통과하여 지나간다. 이 까칠한 불덩이 사춘기들을 맨손으로 만지다가는 화상을 입는다. 매일매일 여러 차례 손을 데이면서도, 또 자꾸 까먹고 다시 그 불구덩이에 맨손을 또 내밀려고 하는 나를 위해서, 나 스스로 주의사항을 만들어 보았다. 굳이 데이고 서로 아파할 필요 있나. 제발 보호장갑 하나만 끼고 진격하자고, 나 자신을 오늘도 토닥인다.
1. 서운해하기 금지.
그들의 시선은 현재 창조주의 삶보다는, 그 밖의 세상을 보느라 온갖 에너지를 쓰고 있다. 따라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반응이 시큰둥하고, 귀찮아하는 것에 서운해하면 안 된다. 서운함을 표현해 봤자, 그들은 현재 어차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최종학력이 초졸, 중졸인 미숙한 이 중생들에게, 세상을 살아야 깨닫는 성숙한 감정을 기대하면 안 된다. 어차피 그들도 언젠가는 깨닫는다. 서로의 사랑을 느끼기에는 시간차가 있다. 따라서, 서운함을 느낀다면, 그걸 해석도 못하는 이들에게 왜 못 푸냐고 성질내지 말고, 이미 30년 전에 서운했을 내 부모나 한번 가여삐 여겨주면 된다.
2. 캐묻기와 대답 강요 금지
그들은 이제 어린이 시절처럼 세상의 전부가 엄빠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성인의 형체를 거의 갖추어가고 있고, 곧 날개를 달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가기 직전의 상태이다. 그들은, 그 직전에 또래의 친구들을 상대로 근방부터 조금씩 세상을 탐험해 보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내 근방에 이상한 놈, 짜증 나는 놈, 배신하는 놈,, 놈놈놈들과 부대끼며 종일 보내다가 집에 오면 무지 지친다. 그렇게 세상을 탐험하다 지쳐서 집에 돌아온 중생들에게, 오늘 뭐 했냐고 캐묻는 것은 방문을 닫게 하는 지름길이다. 방문을 닫고 게임과 SNS로 들어가는 그들은, 그저 뇌를 쉬고 싶은 것이다.
3. 성적표 훈수 금지
모든 것이 깨어나며 방황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춘기들을, 사회에서는 소고기 등급처럼 점수로만 그들을 공식적으로 평가한다. 어쩔 수 없이 성적표로 부모와 또래, 선생님에게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내키지 않는 공부라는 과업을 나름대로 순응하면서 습득하고 있다. 그들이라고 문제를 틀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상심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본인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라고 운을 떼면 알면서도 비뚤어지고 싶다. 어른도 사회에서 비교당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냥, 내 인생이나 남과 비교질 안 하고 똑바로 살아가는데 더 집중하면 된다.
추가
그래도 순간순간 어이없게 이 중생들이 귀여울 때가 때가 있다. 뭐든 귀여울 어린 아기 시절은 아니지만, 딱 이 까칠한 시절에만 느끼는 정말 귀여운 그 순간이 훅 지나칠 때가 있다. 그 모먼트를 꼭 기억해서 기록해 놓아야 이 시절이 잊혀졌음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고대기로 공들여 앞머리를 말며 역대급 기술로 방을 어지럽힌 후 헐레벌떡 집 밖을 뛰쳐나가는 자칭 성인 1, 나보다 키도 크면서 집에 와서 애착인형을 껴안고 뒹굴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자칭 성인 2, 그들은 이제 둥지를 떠나 훨훨 날기 직전의 형상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여전히 유아기 행태 그대로 남아서 나에게 뒤치닥거리를 선사한다.
사실 어디까지가 이해의 개념이고 어디까지가 가정교육의 개념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나는 매일 헷갈리고 휘둘린다. 타고 나길 소인배인 나에게, 대인배의 사랑을 품어 보라는 것은 아무리 되뇌어도 여전히 참 버겁기도 하다. 남의 가정은 다 화목하고, 서로를 알아서 살뜰히 챙기는 것 같은데, 그동안 자식의 거울인 내가 본보기를 잘못 보여서 이리 된건 아닌가, 혼자 후회하고 의기소침해질 때도 많다.
그런데, 기죽어 있고 서글퍼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또 이제 시간도 없다. 아쉬웠던 지나간 시절은 후회해봤자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이제 곧 훨훨 날 것이다. 원없이 날다 보면 갑자기 다치고, 호된 비를 맞고, 말도 안 되게 아플 때가 생길 것이다. 그 때 문득 생각나는 곳이 이 곳이 되려면, 내가 끝까지 기필코 사수해야 할 것은 여전히 사랑이다. 끝도 없이 생성하고 만들어 주어야 하는 내가, 고작 이런 사소한 것에 데이며 오해하고 움츠러들며 벽을 치면 안 된다. 그곳은 늘 다정하고 포근해야 한다.
내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만이 이 둥지를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보수하며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아주 낡고 볼품 없어져도, 그 사랑 하나 만은 퍼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길고, 지금은 보호장갑 끼고서 나를 보호하며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 시절인 것 같다. 이 시절 역시 찬란함을 잊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그들을 믿는다. 이번 생은 그들을 끝까지 믿기로 했다.
*춘기: 사춘기
*창조주: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