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기 전에도 내내 빗속에서 살던 초가을의 하루 하루였다. 애니매이션 '날씨의 아이'에 나오는 도쿄에 사는 사람들 처럼, 나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환호성을 치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마음이 분주해지고 부지런히 하늘을 바라보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번주는 제대로 태풍이 온다 하니, 나는 그저 날씨앱을 쳐다볼 이유도 없이 담담히 오늘을 받아들였다.
어제 우체국에 잠시 들렀는데, 전쟁이 난 듯 오만 난리길래 왜인가 보니, 명절선물로 택배는 만선인데 태풍 때문에 이번주 내내 배가 뜨지 않을 것이라, 오전까지만 모든 택배가 마감이고, 이후는 명절이 지나서야 도착한단다. 자그만치 열흘 넘게 묵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냥 포기하고 소포를 회수하는 사람 반, 여기저기 연락하는 사람 반 정말 아비규환 속 상황을 보니, 아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섬이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오늘은 혼자 출근하는 날인데, 두려움에 떨며 한시간을 와이퍼 최고속으로 돌리며 거북이처럼 목장에 출근하면서 흐린 눈을 부릅뜨며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와 진짜 나 퇴근할 때 바닥에 차가 잠기는 건 아닐까? 차가 잠겨서 가라앉으면 나는 차 문을 열어야 하나 창문으로 나와야 하나? 오늘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 굳이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뭐 이런 엄살을 떨며 동물병원에 도착했는데,
흠. 물폭탄이 떨어지든 눈보라가 치든간에 이 동네는 여지없이 돌아가는 사실에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입원마 관리자분도 나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 말들 왕진 예약 잡으려 직원분도 나를 찾고 있고, 심지어 이 난리에 말을 퇴원시키려고 저 멀리서 말 차도 도착해서 겨우겨우 태워서 보냈다.
허허. 나만 태풍을 크게 여겼지, 말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는 평온함 속에서 나 역시 서서히 비바람이 두렵지 않고 편안해진다.
우리 병원은 천정이 높고 유리 통창도 있어서 쏟아지는 비가 운치있게(?) 보이고 그 빗소리가 꽤나 웅장하다. 울림이 좋은 큰 공연장에 갔을 때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칠 때 나는 그 물개박수 소리처럼 촤촤촤촤촤 하는 그 빗소리가 이제야 낭만적이게 들린다. 사방이 관객석이어서 그 엄청난 울림 속의 기립 박수소리를 서로 느끼며 레전드 공연이었음을 확인하며 소름 돋았던 롯데콘서트홀 안에서의 그 날이 떠오른다. 정말 그 날은 공연도 좋았지만 그 박수소리가 소름끼치게 멋졌고, 환호하지 못하는 퐁퐁당으로 앉은 시국에서, 관객들이 싱어와 연주자에게 빈자리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질 만큼 감격을 표현해주는 듯한 엄청난 에너지의 박수소리 공명이 느껴졌었다. 빗소리 같이 후두둑한 시원한 박수 소리의 음압이 공연 만큼이나 압도되었던 그 날의 벅참이 생생하다.
태풍 속에서 오늘은 그 날의 그 곡을 들으며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촤촤촤촤 하며 천정을 두두두두 두드리는 비박수를 맞으며 왕진차를 몰고 출발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