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그녀는 한우를 먹었는가

소심한 결과보고

by 말자까

새해를 맞이하여 야심차게 계획했던 거절당하기 프로젝트의 질문 3개를 공표하고 한달이 지났다.


1월에 거절당할 프로젝트 3가지 질문을 잊지 말게 하기 위해 책상 옆에 써붙여 놓았건만, 생각보다 나는 변화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고집스럽고 타협이 어려운 인간이었다. 책상 옆 메모는 외면 받고 그렇게 아무것도 못한 채 1월 말이 다 되가는 시점, 이러다 새해 첫 달부터 보기좋게 미션이 실패할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고 급하게 마감에 닥친 일 처리하듯 말일 즈음에, 밀린 시도를 옛다 모르겠다 하며 몰아쳐서 한번 해 보았다. 역시 최고의 독촉은 마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월의 미션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다.


1. (누군가에게, 대면) 한우 사달라 하기


이게 이게 참 어려운게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끝도 없는 도돌이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호감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상대가 거절하기 얼마나 난처할까 싶어서 입이 안떨어졌다. 그리고 호감인 사람이 진짜 사주면, 내가 정말 한우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그리고 다시 내가 사주어야 하나 이런 부담스러운 관계를 내가 굳이 시작해야 하는 걱정을 빙자한 핑계가 나를 가로막았다. 친하고 싶지만서도 그 후의 부담은 정말 정말 떠안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비호감인 누군가한테 이야기하면 거절 프로젝트는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알량한 존심이 강하게 버텨서 후보군이 몇몇 있었으나 결국 입이 떨어지질 못했다. 아마도 굳이 내가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나의 반사회적 자아가 강하게 돌아가서 실패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적절한 거절당할 만한 만만한 (?) 상대를 찾지 못한 채 한달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엊그제 명절 전 마지막 날. 응급 수술을 마치고, 말을 회복실에 옮기니 어느덧 퇴근 10분 전이었다. 으악. 말이 일어나서 회복하고 입원실까지 옮기는 일까지 마무리 하려면 무조건 야근 각이다. 그러면 팀원 저녁은 해결해야 하는데, 이 시골 동네에는 이 시간에 거의 문을 닫아 먹을 곳이 없다. 동료 후배가 청소하면서 '목장장님이 예전에 수술 늦게 끝나면 저녁 사준다고 하던데..' 라고 운을 뗐다. 흠. 아무래도 나에게 하는 소리 같다. 그렇다면 내가 연락해야 되는 것이구나 (쉬운 말로 '등떠밀려') 목장장님께 17:50분에 전화 버튼을 눌렀다.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평소에도 밥 한번 같이 먹은 적 없는 분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이기에 그냥 거절 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거절하면서 얼마나 미안하실까 앞서 생각하며 '등떠밀린' 질문을 하였다.


소심하게 뭔가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희가 응급 수술을 이제 마쳤는데요..저녁 먹을 곳이 없어서.. 지난번에 저녁 먹고 싶을 때 말하라고 하신게 생각나서.. 혹시 오늘 괜찮으시면 저희 저녁 사주실 수 있는지..쭈굴.."

입사 1x년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두서없고 엉망인 목소리로 나는 죄지은 사람인 것 같은 목소리로 쫄아서 물었던 것 같다. 계획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머릿속이 고장 난 듯 했다. 목장장님은 퇴근 직전 친하지 않은 고장난 부하의 급번개 요청에 당황하신 듯 하다, 이내 호쾌한 성격답게 바로 답을 주셨다.


"아, 그, 그래?..(정적)..몇명이야?.. 그럼 나랑 같이 가자. 10분 후에 정문에서 보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같이 가자?"


멍하다가 생각해보니. 이거 미션 실패네? 올레!!


이렇게 그 날 아마도 졸쫄 굶었을 시간에, 우리는 이 구역에서 가장 맛난 흑돼지를 장장님께 얻어먹었다. 사실 후배가 등떠밀어 전화를 하게 되어, 상사와 처음으로 바깥에서 식사를 하게 된 날. 그 날의 모든 정신과 육체의 피로가 뜻밖의 포식으로 사라졌다. 좀 억지이긴 하지만 난 이걸 거절당하기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여기기로 했다. (하하하).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뭐 사달라는 이야기를 어려운 사람에게 했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 얼떨결에 거절 프로젝트에 넣어 본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이게 뭐 그렇게 못할 일이라고, 이런 질문 하나도 내가 이렇게 쭈뼛대며 못하는 사람인 지 뼈아프게 알게 되었다.


막상 시도해보니, 생각보다 내가 정말 이런 류의 조르기 말을 주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는 한번 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사달라 프로젝트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

첫번째 엉성한 거절 프로젝트로 그녀는 소고기보다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었다.

육즙 가득한 돼지고기보다 더 기쁜 것은, 그녀에게 이제 남의 도움으로 첫 발을 떼었으니 이제는 혼자서 입을 열어볼 경험치가 생겼다는 것이다. 쭈뼛대면 어때 일단 나는 이제 남에게 말 못꺼내는 신생아가 아니고, 처음으로 발걸음을 떼었다는 사실이다.!!


지아 장 님이 거절 프로젝트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아주 어렴풋이 나는 첫번째 미션을 행해보면서 머리에 와닿았던게 몸으로 와닿게 되는 짜릿한 저녁이었다.


* 출처: 업체 제공 사진. 그 날의 기쁨을 떠올려봄. 거절 당하기 프로젝트가 이래서 좋은 것이다. 거절 당하면 성공이며 거절 안당하면 이런 개이득을 얻을 수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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