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미션 결과보고
쏜살같고 일정하던 내 삶의 일부분에서 팔딱거리고 놀고 있는 2월의 거절당하기 프로젝트 결과를 아래와 같이 보고한다.
미션 1) (아는사람, 비대면) 친구에게 돈빌려달라고 메세지 보내기.
참으로 어려운 미션이었다. 일단 목표대상을 한참 생각해 보았다. 일단 너무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일 친구 (진짜로 입금해버리면 너무 난감하니깐 ㅎㅎ), 그리고 손절 안당하고 내가 싹싹 빌면 나의 똘끼를 이해해 줄 친구, 그리고 신중하고 사려깊은 친구를 선택하려 하는데 넓지 않은 내 인간관계 속에서 고르는게 참 어려웠다.
오랜 시간 애꿎은 전화번호부 목록만 백만번 돌려보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숨을 가다듬고 친구를 선정했다. 그리고 메세지를 쓰고선, 이걸 정말 눌러야 하나 누르면 돌이킬 수 없는데 고민하며 소심하게 또 한참을 밍기적대다가 결국 눈 질끈 감고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자주 통화하던 친구가 아니기에 더욱더 메세지를 보내는 내 손이 너무나 민망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읽음 표시가 없어지자 마자 이런 바로 전화벨이 울리네?
헉. 차마 내가 통화로는 말할 생각은 못했는데, 그래서 메세지로 보낸 건데 너무나 당황해서 못 받고 안절부절 하다가 벨소리가 마지막으로 끊길 즈음에 겨우 받았다.
(친구) "야, 너 맞아??? 너 맞지???"
(나) "...........어.......나 맞지....."
(친구) "야, 너 내 친구 맞아? 이거 피싱 아니야?"
(나)"...................하하하하하..........그게............허허허허허, 너 그런데 왜 답장을 안하고 전화를 하냐?"
그렇다.
나의 친구는 피싱 의심자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고 바로 통화를 통해 확실히 확인하는 신중하고 똘똘한 친구였다. 오랫만의 통화에 친구를 너무 놀래킨 것 같아, 나는 일단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싹싹 빌었고 나의 거절 프로젝트에 대한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하였으나 친구는 도무지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를 못한 채로 일단 전화를 끊었다.
결론: 거절당하기도 전에 들킴. (이미 거절을 당한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생전 안하던 짓을 행한 나의 작태에 놀란 오랜 친구를 안심시키며 평탄한 삶 속에서 해일처럼 솟은 특별한 하루를 종료하였다.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거절 당해보는 미션을 해본 결과, 나는 상대에게 무례한 질문이었다면 충분히 해명하고 사과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역시나 세상은 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내가 항상 상대에 대해 지레짐작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자로 거절이 올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는데, 사실 거절은 전화로 확인을 할 줄 몰라서 당황했다. 거절 미션을 안했다면, 금전을 빌려달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인지 오히려 친구에게 배우게 되었다. 거절 당하기 프로젝트.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주는 면이 항상 있다.
미션 2) (모르는사람, 비대면) 생일인데, 공짜시술되나요?
결국 생일날은 한참 넘기고 2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어쩔수 없이 내가 이 프로젝트를 왜 한다고 했냐고 스스로를 탓하며 지각대장처럼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함.
" (알던 피부과) 저기, 제가 이번달 생일인데 생일 이벤트 특가 같은거 없나요?"
"..(당황).. 아 현재는 그런 이벤트가 없습니다."
".. (죄송해하는 목소리에 내가 더 죄송해서).. 아니에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결론: 성공! (거절당함)
고찰: 처음으로 내가 생각한 그대로 거절 당하기 프로젝트에 성공했다. 말도 안되는 질문 같았는데, 어이없는 것을 물어보는 나의 마음과 멘탈이 조금 철판이 깔린 것도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예상 답변에 오히려 나는 거절 당하는 데에 자신감을 한스푼 얻게 되었다. 심지어 거절을 깔끔하게 당하니 기분이 개운해짐을 처음 느끼며 내 스스로가 우스웠다. 거절 깔끔히 당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나의 질문으로 인해 상대가 불쾌함이 감지되는 경우, 바로 이실직고하고 사과할 용기를 가진 채로 질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거절을 당하는게 끝이 아니다. 타인이 어떤 포인트에서 거절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 나는 다시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위트있게 안심시키는 지 까지가 거절 당하기의 끝이다. 나는 소심쟁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귀한 감사함을 이 분들에게 드려야지, 먹고 튀며 진상 1명이 증가하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하면 죽도 밥도 아니다.
미션 3) (모르는 사람, 대면) 오늘 졸업인데 꽃한송이 주실 수 있나요?
결론: 미시행.
고찰: 일단 현장을 맞이하니 이건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너도 나도 졸업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인파 사이에서 나 역시 일개 1인인데 어떻게 꽃 한송이를 사달라고 도무지 할 수가 없음을 인지했다. 인간사 기브앤 테이크인데 똑같이 졸업하는 기쁜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나만 달라고 떼써서 기분의 흠집을 낼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진상력 만렙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질문 자체를 깔끔히 포기하고,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가족사진 서로 서로 찍어주며 졸업 축하단다는 덕담만 서로 열심히 하며 즐거운 졸업식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2월 말일. 대체 미션으로 어떤 거절을 당해볼까 하다가, 예전에 운동하던 센터를 표적으로 삼았다. 간만에 전화해서 질문을 했다. 사실 요즘 운동을 안하고 있어서 정말 물어 보고 싶은 사심도 약간 있었다.
수정 미션 3) (모르는 사람, 비대면) 저 이번 달에 졸업이랑 생일인데 혹시 회원권 할인 이벤트 없나요?
결론: 실패. 예상치 못한 거절 안당함(?)
너무 친절한 담당자였다. "아~ 네~~~그러셨군요~~~~. 아쉽게도 그런 이벤트는 없지만, 회원님이 이번달에 졸업과 생일도 있으셨다니깐 제가 특별히 이벤트가로 모셔드릴께요. 4만원 할인에, 락카무료까지 특별히 해드릴텐데 이번달 까지여서 오늘까지 등록해주셔야 이벤트가 가능하세요~~몇 시쯤 방문 가능하세요?"
(나 1차 당황) "아.. 제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상대) "회원님~~ 제가 회원님 좋은 일 있으셔서 특별히 해드리는 거니깐 오늘까지 꼭 혜택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34%@$"
(나 당황*당황) 가까스로 어떻게 끊었다. 거절은 하기도 당하기도 어렵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특히나 나는 거절하는게 당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당황스럽게 전화를 끊고 나니 바로 휴대폰 메세지가 띠리링 비집고 들어왔다.
허허..
호기로웠던 초짜인 나는 영업 고수 분의 코털을 건드린 것 같다. 미션 실패이자, 거절을 안당해서 개이득인 것 같으면서도, 왠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고 진땀을 뺐던 세번째 미션을 끝으로 2월의 거절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 이참에 진짜 운동 등록할까? 생각도 잠시 들었다는 후문.. ㅎㅎ
총결론
2월의 총 결론은, 3개의 미션 중에서 두개를 거절당하고 한 개를 거절 안당했다.
2월의 거절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는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도 나의 질문에 당황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용기와 배짱이 거절프로젝트의 핵심인 것 같다. 이러다 보면 12월 쯤 되면 여기서 조금 더 철판을 깔아서 안된다 하면 "why?" 라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물을 수 있는 고수가 되는 날이 있겠지.
거절 프로젝트는 구상부터 고찰까지 좌충우돌 하면서 생기는 삶의 일탈이, 마치 여행 같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방향의 나의 일부를 툭 건드리고, 단련시켜주는 느낌이다. 내 안의 눈치보는 소심이의 성장일기 같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하던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시도도 안하면 절대 모른다는 말의 실전형이랄까? 질문이 비윤리적이고, 위법이고, 화를 가하는게 아닌 수준으로 한정한다면, 거절 당하기는 건강한 자극인 것 같다.
또한, 상대와 나와의 감정과 예상되는 마음을 미리 가늠하고, 그 전에 협상 포인트를 찾게 된다는 점에서 메타인지가 더 높아지고, 타인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보는 의외의 순기능이 있다는걸 발견했다. 여기에 보다 적극적인 사과와 보상의 타임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건강한 거절과 화해로 오해(?)는 풀며 서로 윈윈 을 도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3월부터는 무언가 내가 경제적 이득을 보는 형태의 부탁형 진상형 질문이 아니고, 변하지 않을 사실이나 규정 같은 것을 바꿀 돈키호테형 질문으로 조금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고객 응대를 하는 대상자 또는 지인 에게 진상력을 발휘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면, 3월부터는 영향력을 가진 인사에게 말도 안되는 저돌적 질문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예) 교육부장관 : 초등학교 교과목에 '경제'를 넣으면 안될까요?, 기획사: 저희 회사에 초청공연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무래도 내가 간이 점점 커지나보다. 하하하.. 아마도 그러려면 내 뒷받침 근거는 어느정도 있어야겠지. 혹시 아는가 나비효과로 세상이 바뀌고 내 인생이 바뀔지. 생각을 조금 더 해보고, 3월의 조금 더 스케일이 커진 거절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이번에는 제대로 시원하게 거절 당해보는 3월의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선 돌아오겠습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