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가 만들어낸 가까워짐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초밀착 생활
어느 날 문득,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결코 오지 않았을 순간이 나에게 운명처럼 성큼 다가왔다.
그야 말로 문득 어느 날,
아이들에게는 100% 온라인 수업, 나에게는 직장의 부분 휴업, 그 교집합이 시작되었다.
'그래. 이참에 조금 쉬고, 여유를 가져보지 뭐'
라고 속단한 내 생각을 비웃듯이, 24시간 내내 녀석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생각처럼 마냥 편안하고 소중한 휴가 느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괴로웠다. 허나 나는 갓난쟁이 육아 초보도, 산후우울증도 아닌 초딩 엄마이다. 그러니 다 큰 아이들에게 이렇게 허덕이는 무력함을 어디 내세울 수도 없어서 더 괴로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생후 1년간 아이들을 그저 먹이고 씻기던 육아휴직 시절을 빼고서는, 온종일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하는 시간이 이번이 처음인 걸 깨닫고 나니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한창 학교수업이 길어지고 등록할 학원이 늘어날 일만 남은 초등학교 아이들. 그리고 이제는 직장이 집보다 더 루틴이 되어 버린 15년차 직장인. 사실 우리는 하루 중 공유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 미래가 예정이었는데, 운명은 우리의 편안해진 거리감을 다시금 바짝 한 몸처럼 묶었다.
나는 직장에서나 노련했지 살림과 교육에는 감떨어지는 워킹맘이었고, 아이들은 올망한 눈망울로 내 말을 따르던 그저 귀여운 유아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다들 성격도 취향도 삶도 다른 인간들이 새로이 시작하는 동거 그 자체였다.
우리 늘 함께였는데, 왜 이리 불편하지?
아이들 입장에는 자유로이 조부모 밑에서 원하는 대로 게임도 티브이도 무한정 보며 주는 밥만 먹던 편안한 삶이 깨졌고, 내 입장에는 편하게 누리던 직장의 편안한 반경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더 쉬고 자유로이 살고 싶은 공주와 왕자로 자랐고, 나는 졸지에 집사와, 선생님과, 놀이 친구를 24시간 겸직해야만 하는 '엄마'를 '명' 받았다.
그 와중에 INTJ 성향 엄마는, 그동안 신경 못 쓴 것을 제대로 써준다는 빌미로 공부든 운동이든 생활습관이든 뭐든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슬슬 계획을 세워 하루를 쪼개며 아이들을 슬슬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들은 자꾸 동굴에 들어가 버렸다. 엄마가 있으니 마냥 밖에 나가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은 딸의 장단을 맞추면 아들이 벅차하고, 집돌이 아들 장단에 맞추면 딸이 심심해 미친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는데, 너희들은 나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 같지 않고, 뭐 하나 쿵작이 맞지 않고, 온종일 집안에 있다 보니 생기는 시시때때의 싸움을 뜯어말리고 어르다 보니 어느새 한달이 훌쩍 지났다.
흡사 이건 신혼 초 남편과 부딪치던 그 오랜 느낌이다. 각자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다르고 그것을 절충해야 하는 상대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식' 일 줄이야.
지금까지 같이 살았는데,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종일 붙어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우리가 티격태격하다니 실로 놀라웠다.
내가 답답한 만큼 아이들도 힘들었겠지. 어렵지만 지키려고 노력하다가도, 이미 맛본 티비와 게임의 달콤함이 자꾸 생각나고 눈물 났겠지.
Step 1. 몸으로 게임을 물리쳐봐
온라인으로만 사는 코로나 집콕 생활은 물리적으로 갑갑했고, 어찌 됐든 몸을 놀려야 낫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배드민턴. 다른 운동보다 접근도 쉽고 근처에 코트장도 있어서 일단 도전해 보았다.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게임만 찾는 아이들을 조금 유연하게 하고 싶었다.
저녁에 귀찮지만 무조건 나갔다. 몸치인 나도 처음이고 아이들도 처음이고, 공만 줍다 끝나더라도 무조건 공원에 발도장을 찍었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했다. 그렇게 몸을 놀리고 몸동작에 서로 웃으며 땀을 내니, 각자의 눌린 스트레스가 시나브로 녹아 갔나 보다.
샤워 후 이불 속에서 잡담하며 둥글대는 그 느낌이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진 걸 보면 아이들은 고맙게도 불편한 벽을 조금씩 허물어 주고 있었다.
이제는 저녁에 아이들이 먼저 나가자 제안하니, 이왕 이리 된거 우리의 합의점이 된 배드민턴 신동으로 거듭나고 싶다. (이와중에 또 야심참). 이제 어느덧 쌀쌀한 계절이 되었지만 현재 우리는 무얼 하든간에 아직도 일단은 그냥 나간다.
step 2. 일석이조 용돈벌이
매일 슬렁슬렁 장도 같이 보러 다니고, 요리할 때도 집을 치울 때도 언제나 삼인방이 붙어 있다보니, 끝도 없는 홀로 집안일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며칠 전 서점에서 자꾸 내용 대비 (내 기준에) 비싼 만화책을 사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엄마가 너희가 늘 하던 일에 용돈을 조금씩 주고 싶은데 어때? 너희들이 용돈 받을 일과 돈을 알아서 정해봐.'
'엄마는 그 돈을 꼭 줄 거고, 너희가 그걸 모아서 무슨 책을 사든 어떤 과자를 사든 전혀 상관 안 할게. '
역시 인간은 자본주의의 노예인가. 미션은 성공! 아이들이 적어낸 적정 주제와 적정가를 적어놓은 칠판이다.
('끝을 모르는 자잘 자잘 청소' 와 '주식 조언'에 빵 터짐)
나야말로 녀석들 사주기 싫은 아이템 가지고 실랑이 안 해도 되고, 아이들이 가사일을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나에게 훨씬 좋은 패를 아이들이 덥석 문 느낌 같기도 한데, 뭐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적은 것이니 당장은 순항할 것 같다 :)
* 3개월 후: 아이들의 열성으로 목표한 돈은 채워졌으나, 그걸로 과자도 만화책도 아닌 게임의 일부를 사고 싶어해서 나는 또 한번 멘붕이 왔으나 이미 약속한거 쿨한척 번복 없이 사주기로 했다는 씁쓸한 후문 ㅜㅜ.
어쩌다 사랑
코로나는 이렇게 우리의 인생의 키를 바꿔가고 있다. 우리 가족의 키 뿐만 아니라 개개인 인생의 모든 키를. 10년 만에 급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아이들과의 초밀착 공동생활과 갈등이 어쩌면 인생의 큰 운명 같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가족의 큰 방향 키는 이제 그럭저럭 조절된 듯한 느낌이어서 안도감이 든다. 비록 코로나로 잃는 것도 참 많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이 시간을 그저 소중히 대해야 한다 되뇌이며, 언택트 시대가 마련해준 우리의 접촉과 시간을 앞으로도 애써서 어떻게든 지켜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