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름을 지우고 살아온 우순옥의 삶

by 디지로그마담앤

제도적 남존여비는 사라졌다지만,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 돌이켜보니 나의 기록조차 9할이 아버지의 서사로 채워져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거목 ‘가장’의 역사였고, 엄마는 그 역사의 뒤편을 묵묵히 지탱하는 ‘배경’이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언제나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다니던 막내였던 나에게 엄마는 우주 자체였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권력의 정점은 늘 아버지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9시 뉴스를 보실 때면 자식들의 웃음소리는 숨죽여야 했고, 식탁의 반찬들도 아버지 취향인 반찬들이었다. 부부싸움 끝은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승리였고, 엄마는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전부였다. 어린 눈으로 보아도 엄마는 늘 ‘참는 쪽’이었고, 아버지는 ‘당당한 쪽’이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랬다. 하기 싫어도 참아야 했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사셨다. 헌신은 당연한 도리로 치부되었고, 칭찬보다는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의무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남 5녀, 나이 터울이 큰 육 남매를 키워내는 일은 365일 끝이 없는 일의 연속된 날들이었다. 내 기억 속에 늦잠 자는 엄마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농사일이 바빠도 엄마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도시락을 싸놓고 나가셨다.


농사일의 무게 또한 평등하지 않았다. 밭일의 고단함은 남녀가 비슷했지만, 안살림과 육아, 시부모 봉양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80세가 넘어서야 “우리 집이 여기까지 온 건 다 엄마 덕분”이라고 고백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는 죽을 만큼 힘든 순간에도 가정이란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 그 안을 알뜰히 채우셨다. 엄마는 랍비보다 지혜로웠으나 그 현명함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자식들이 그 그늘 아래서 잘 자라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엄마,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였어?” 내 물음에 엄마는 망설임 없이 답하셨다.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식이야.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간결하지만 묵직한 그 대답 속에는 엄마의 전 생애가 녹아 있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아파도 참고, 억울해도 누르며 살아온 세월의 응축이었다. 엄마의 마음이 자식에게 100% 전달되지 않는다는 너무나 잘 알면서도, 엄마는 기꺼이 자신의 우주를 내어주셨다. 설사 내가 엄마가 되어도, 자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깊은 속은 절대로 다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끝없는 사랑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한없이 바라기만 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내게 준 그 우주 같은 사랑은 이제 나의 아이들에게, 즉 엄마의 손주들에게로 고스란히 흘러가고 있다. 대체 그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찾아봐도 엄마의 생애엔 엄마 자신을 위한 삶이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본 적 없는 분이기에, 남겨진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오직 엄마만을 위해 살아도 부족할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도 나의 마음만 잠시 뜨거워질 뿐, 다시 뒤돌아서면 내 몫의 현실을 살아내기 바쁘다. 우리 모두 이런 모습으로 후회하고, 또 다짐하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 엄마는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한 뿌리이자 나의 우주였어. 감사하고 사랑해, 우리 엄마 우순옥 씨. 엄마 곁에서 훗날 사무치는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들을 결코 헛되이 쓰지 않을게.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이 내 안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듯, 나 또한 엄마의 남은 길을 환하게 비추는 딸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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