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야.

농담에 웃지 못할 때, 나는 나를 지키고 있었다.

by 밝은영은쌤

"너한텐 농담도 못하겠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야."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유머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가끔 웃지 못할 때가 있다. 농담 이면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서늘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자책하곤 했다.


'역시 난 너무 예민한가 봐'

'내가 열등감이 있는 건가? 자격지심이 있나? 이 감정은 대체 뭐지?'


오랜만에 연락된 지인과 서로의 근황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오래전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필리핀분과 결혼을 했다고 하며 자녀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생활하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우리 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떠올렸다. 정말 사랑스럽고 외모적으로나 실력면에서 우수하고 부모님들도 한국 이름으로 바꾸셔서 전혀 다문화가정인지 모를 만큼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요즘 다문화가정 아이들 다문화가정인지도 잘 몰라"


따로 알아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잘 적응을 한다는 의도로 한 말인데, 돌아오는 답은 싸늘했다.


"넌 승진에만 관심 있고,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구나?"


나는 웃지 못했다.

뒤돌아서서 이 정도의 농담에도 웃지 못하는 나의 예민함을 자책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아나요?'라는 대답을 간직한 채.

“너 T야.”

“시골 살아서 파스타 못 먹지?”

그런 말들이 농담으로 던져졌을 때, 웃자고 한 말인 걸 알면서도 웃지 못했다. 왜일까. 아마 그 안에 나를 가볍게 여기는 온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예민해서"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하긴 너무 쉽다. 그리고 그건 어떠한 상처에도 견디는 것이 성숙한 감정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하는 말 같다. 이 정도에 기분 상하면 예민한 사람이라는 듯이.


하지만 알게 되었다. 농담에 웃지 못할 때, 나는 나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다. 모든 사람들의 말에 웃을 순 없다. 내가 존중받지 못할 때 억지웃음을 짓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공감할 때 웃음을 짓는다. 내가 그들의 말에 웃을 수 없던 이유는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말이 전해지는 여러 가지 비언어적 요소들마저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말에 불편했다. 나는 나를 꽤나 사랑하나 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말에 웃지 않아도 괜찮다. 웃지 못하는 건 나를 존중하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나 또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충고나 조언, 평가와 판단의 말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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