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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일린 May 28. 2023

왜, 글을 쓰는가

브런치를 시작하며


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일 자체가 꽤 글을 쓰는 직업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깊은 곳의 자신이 쓰고 싶었던 글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영문학도로 4년을 지내며, 영어도 문학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지만, 뭔가 글은 열심히 쓰고 지냈던 것 같다.

애정하는 친구 (지금 정말 멋진 글을 쓰고 번역하는 업을 갖고 있는)와 편지글, 20대의 변화하는 감정과 상념을 담은 일기,

그리고 ‘하이텔 동호회’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내 감정과 단상을 글로 옮기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경험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끝내 이루어지진 않았다.

좋아한다고 다 밥벌어 먹고 살 정도의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 늘 목전에서 무언가 막히고 돌아서곤 했다.

사실 취미는 인문학적 글쓰기지만, 특기는 경영학적 글쓰기여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시나리오/방송작가/기자를 시도해 봤지만 쉽지 않았고, 광고회사에서도 카피라이터를 희망했지만 AE(기획)으로 문이 열렸고, 뭐 등등.

그러고는 컨설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길은 완전히 갈렸다.


컨설팅과, 그 후 경영인 트랙에서는, 오히려 ‘글 쓰는 재주’가 좀 도움이 된듯 하다.

CEO에게 제안하는 전략, 조직이 이 전략을 왜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글들.

상당히 논리적이고, 이른바 ‘피라미드 원칙’에 충실하고, 팩트 기반이고, 요약된 써머리 중심이어야 하고, 뭐 그런 글들.

소설과 에세이를 쓰던 애가 이런 글을 쓰니 좀 특이해 보이기도 했고, 스토리텔링에서 좀 차별화 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사업 모델과 전략의 이름을 짓는 것도 잘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예를 들면 뭐 vertical specialist, horizontal integrator같은, 뭐 머리에도 안들어오는 이름들)


물론 즐거웠고, 많은 걸 성취해 보기도 했지만, 20대에 꿈꾸었던 ‘마음과 감정을 담는 글쓰기’에 대한 갈증은 아직 마음 한 구석에 접혀져 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향후를 생각할 때,

커리어 정점을 지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때는, 그간 늘 해왔던 경영/전략/컨설팅/사업개발 등이 아니라, “여행가, 수필가, 여행컬럼니스트, 인간컬럼니스트” 뭐 이런 부캐를 가져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어쩌면 내 안에 이미 내재된 부캐를 다시 끄집어 내는 작은 마당이고,

1300여명의 페북 친구들이나, 몇백명이 넘나드는 회사 게시판과는 완전 다른,

적지만, 나와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오픈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류하는 분들은, 나중에 내 환갑 잔치에 와서 그간 써 온 글과 찍어온 사진을 나누며 와인을 진탕 마실 수 있는 초대권을 받으실 수도 있다!


요즘 일로 인해 여러 sns를 시도해 보고, 여러 채널로 내 모습을 나누고 다른 사람과 소통해 보면서,

다시, 글을 나누고 싶다 - 내 마음을 담은 글을 - 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20년간 회사 이메일 혹은 보고서 글쓰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러프하고 깊이도 없는 글을 주절거리는 1인이 되었지만,

그냥 심심할 때 읽어 보시고 생각도 나눠 보고 수다도 떨어보는, 그런 장소라 생각해 주심 감사하겠다.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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