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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Mar 10. 2024

어느 날 밤의 고백

이혼에 관한 소회

사랑했던 사람과 앉았던 장소에 다시 가는 건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로 편치 않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아직 이 나라에 살고 있다. 난 전남편과 헤어지고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이혼 과정을 겪으면서, 서류가 정리되고 나서도..

그와의 기억은 무엇이든 좋았고 행복했던 것까지 깡그리 다 불태워버리려고 애썼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도 그랬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래야 살 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비참했다.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쩌면 그렇게 싸늘하게 식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지. 몰랐던 사람이라면 어떤 기대치도 없었을 것을 만나서 사랑을 했고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헤어질 인연인 줄 알면서 시작하는 관계는 없을 거다. 굳건히 헤어지지 않을 거라 믿었기에 나중에 더 아프고 분노가 치밀었던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나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을 나눈 내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그것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일 텐데... 내가 가졌던 엄마로서의 꿈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늦은 것인데...


그렇게 그가  미웠다가 이제야 드는 생각은 나도 결혼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거, 그에게도 나는 생각하는 바와 다른 아내였을 거란 거, 그리고 아주 나쁘게 정이 떨어져 버렸다 해도 좋았었던 기억까지 무참히 짓밟을 필요는 없다는 거.. 그런 후회들이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달려왔으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저작활동을 하는 소만치  그 기억들을 잘 추억해 보내주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아프고 힘들 거 같아서 피했던 일을 한 번은 하고 지나가야 진정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계속 한 곳을 맴돌았다가 이제야 비로소 정면 돌파할 힘이 생긴 느낌이다. 괜찮다 괜찮다 했던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나는 나쁘게 헤어진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다. 그를 만나 데이트하면서 난 열심히 일기를 썼었다. 사랑에 기대지 못했었고 기대도 없었던 나에게 그는 언제든 늘, 나를 받쳐줄 것 같이, 위로를 해 주었다 (고 믿었다). 그게 가스라이팅이었다고 해도 그 당시의 나에게 큰 지지대가 되어준 건 사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사랑하게 된 사람을 내 부모님에게 빨리 소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했었다. 왜일까. 세상을 마냥 분홍빛으로 보던 나는 그의 생각을 모르는 채 나를 낳아주신 분들을 만나기 꺼리는 그의 말이 서러워 엉엉 울었다.


준비가 덜 되어 있던 거였겠지, 그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도 나도 그렇게 성급히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생활도 인격도 좀 더 영글었어야 했고 그랬다면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그에게 해 주었다. 요구하지 않았는데 해 준 건 내가 그를 그렇게 길들인 거다. 나중에 더 이상 그렇게 하기 싫다고 말하면 나는 그냥 열 번 중에 한 번 못해준 나쁜 애가 되어 버리는 거였다. 그럴 때면 그는 늘 내 외모를 가지고 뭐라고 했다. 비겁하게.. 그럼에도 나는 사랑받고 싶었을까. 사랑받는다고 믿은 걸까.


자존감이 충만했다면 그런 취급은 견디지 않았을 거다. 나는 위기에는 불도저처럼 강한 회복 탄력성은 가졌지만 자존감은 가지지 못했었다. 7년쯤 지나 보니 그 모든 게 하나의 과정이었나 싶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갖추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라는..  자존감에 대해 파헤쳐 보니 그 안에는 엄마와의 관계 재정립에 대한 이슈도 있었다. 코로나 몇 년 동안은 그 이슈를 보고 응어리를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힘썼었다. 그러면서 브런치를 시작해 글을  쓰게 되었다.


요즘은 무엇에 관해서든 쓰면서 교묘히 현재가 아닌 과거에 대해서만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아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동시에 거기서 빠져나와 지금을 살아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기이기도 했다. 더 이상은 장소마다 겹치는 그때의,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이 보이더라도 무시하지 말아야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다 보면 지금의 내게 이르겠지 하며. 오래 걸렸지만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 건 그동안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았던 내 마음 탓이다. 이유를 알았으니 관점을 바꾸어 나가면 된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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