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출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받고 난 지 약 3달 후인 현재.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취직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지난 달 실무교육을 이수하고 약 일주일간의 자체적인 리프레쉬를 가진 후 협회에서 일자리를 알아봤다. 처음 에는 아파트를 거래하는 아파트 단지 내 사무소를 알아보았으나 얼마 안 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아파트 거래하는 중개 사무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간간히 사람을 뽑는 곳도 있었지만 모두 다 경력직을 원했다. 이력서를 두 세 군데 넣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집 근처에 아파트 단지 내 사무소를 양도하겠다는 곳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취직이 안 되니 차려야 겠다는 당찬 결심을 해보았더랬다.그러나 높은 권리금과 위치가 꺼려져 생각을 접었다. 무엇보다 초보인 내가 그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사무소를 낸 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그러다 상가 매매를 하는 사무소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았다. 사실 상가는 어려울 것 같아 시작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기에 지원했고 일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직원이 총 8명이고 모두 다 나와 같은 소속 공인중개사다. 기본급이나 식대, 교통비 등은 없다. 대신 계약당 비율제로 받는다. 이쪽 일은 월급받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진작 알고 있었다. 최종 목적은 내 사무소를 차리는 것이므로 돈을 떠나서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무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들 실장님으로 칭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것이 직원간에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하관계도 아니므로 대등한 관계에서 일을 한다. 다른 중개 사무소와 다르게 일도 하나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제 시작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중의 초짜다. 분위기를 보니 전화통화를 굉장히 많이 하고 외근도 많이 나간다. 실장님들의 연령대는 30대~50대 사이로 나보다 어린 실장님도 계시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실장님도 계신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두다 선배님이다.
어제 첫 출근을 하며 나 자신에게 정말 많은 칭찬과 응원을 해주었다. 거의 11년 만의 출근이라 긴장도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시작은 했다. 지금은 일단 시작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아이들이 눈에 밟히긴 하지만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엄마를 만나는 기쁨도 쏠쏠한 듯하다.
다만 출근 첫날이었던 어제 중1인 큰 아이가 아팠었다. 아침부터 목이 붓고 몸이 으슬으슬 하다며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학교에 갔다. 하교하며 목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가던 병원이 문을 닫아 낯선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고 약국에 가서 약도 타왔다. 이 걸 아이가 혼자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픈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짠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큰 아이는 예민한 기질을 타고나서 아무한테나 맡길수도 없었다. 그 탓에 나도 맘편히 일하지 못했고 2년이나 준비해 들어갔던 통대도 한달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일을 해도 될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는 다행히 엄마가 일 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10년 동안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이제는 일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출근하기 전 날에는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저녁 7시 퇴근이라 오자마나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할 터였다. 볶음밥도 두 종류(김치볶음밥,소고기 볶음밥)를 만들어 냉동실에 잘 넣어놓았다. 엄마가 오기 전 혹시라도 배가 고프면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수 있도록.
오늘 브런치에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동안 정말 돈 벌기 위해 몸부림을 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에 비해 사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그랬으니까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따려고 마음먹었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 남편에게 힘들면 퇴직해도 된다고 당당하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