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유락에서 진행하는 모각글 시즌 5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by 수빈

내 취향을 공고히 할 때마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따라붙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선뜻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공공연하게 니체의 문장을 좋아하고,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말하지만, 그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의 이상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글에 가슴이 뛰는지는 안다. 그 글이 누구의 것이든 상관없다. 남들이 다 아는 작가도, 위대한 문인도, 베스트셀러 몇 권을 낸 작가도, 추천 도서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도 아닐 수 있다. 나를 흔드는 글은, ‘시대정신’을 품은 글이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심장을 둥둥 울리는 살아 있는 문장.


나는 대학 시절 역사학을 전공했다. 당시 우리 교수님들은 대부분 소위 ‘운동권’ 출신이었다. 학과 행사나 회식 자리에서는 늘 그 시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그 노래를 읊을 때, 내 안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내가 겪은 적 없는 시대의 기억이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올랐다. 그 감각은 오래 잠들어 있다가, 작년 한겨울 어느 거리에서, 전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구호 속에서, 대학 곳곳의 대자보와 누군가의 떨리는 연설 속에서 다시 터졌다. 교수님들이 말하던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그때 조금은 몸으로 이해되었다.


나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때때로 부끄럽게 살았다. 불의에 즉각 나서지 못했고, 거대한 구조 앞에 작아졌으며, 나 혼자 분노하고 나 혼자 체념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무너질 때면 깊이 아팠지만, 일상의 바쁨을 핑계 삼아 더 이상 그 감정들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는 작은 돌파구였다. 나는 종종 소셜 미디어에 장문의 글을 올리곤 했다.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 불현듯 쏟아져 나왔다. 그 조각들이 시간이 지나면 내 작업의 스테이트먼트가 되기도 했다. 내가 세상을 단번에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고, 운동의 최전선에 서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된다면, ‘시대정신’을 품은 글이기를 바란다. 나의 언어가 시대를 피해 가지 않기를, 나의 문장이 삶을 지나치지 않기를. 누군가는 읽고 잊어버릴지라도, 그 시간과 공간을 정확히 통과해 낸 언어이기를. 숨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지금 내가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뜨거운 기록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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