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프릭

유락에서 진행하는 모각글 시즌 5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by 수빈

나는 늘 통제를 원한다. 책상 위의 연필은 특정 각도로 나란히 흐트러짐 없이 놓여 있어야 하고, 폴더 이름은 규칙적이어야 하며,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이런 내 '컨트롤 프릭적'인 성향은 나와 타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내가 생각한 바대로 정렬되어 있지 않으면 끝도 없이 정신의 밑바닥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이치란 무릇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기 힘들 듯, 머리로 아는 것을 다른 사고로 흡수해 내는 것 또한 어렵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성향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존재해 왔다. 매년 학급이 바뀌고, 담임 선생님, 짝, 반 친구들이 바뀌는 환경에서 나는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지독한 고통을 앓아 왔다. 그것은 대학교에 가서 비로소 해방되는 듯했지만, 곧 다시 다른 시간차 속에서 불안정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퇴사하고, 새로운 상사가 오고, 팀이 개편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서서히 시들어 갔다.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서 내 내면을 인내로 갉아먹었다.


내 이러한 성향은 흔히 말하는 MBTI J 성향으로 단순히 치부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다. 계획이 어그러질 때마다 나는 곧장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를테면 일을 통해 돈을 모아 어디에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계획이 엎어져 버릴 때, 혹은 미리 잡아둔 일정이 휴가나 공사 같은 외부적 이유로 무산될 때, 마음은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택배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을 때도, 프로젝트가 생각한 방향에서 조금만 벗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A, B, C의 대안을 세우고 그 빈틈을 메우려 애쓰지만, 그 모든 노력이 결국 또 다른 균열을 낳곤 했다. 그래서일까. 아주 작은 계획조차 세우는 일이 두려워졌고, 여행 같은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변수라는 이름의 수많은 파도가 늘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때때로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다. 나와 맞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배제하다 보니, 남는 건 점점 좁아진 세계와 나 자신뿐이었다. 대화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나는 갑자기 벽을 세우듯 말수가 줄어들곤 했다. 상대는 모른 채, 나 혼자 질서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 결과 나는 자주 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가까워지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고, 나의 통제적인 성향은 나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벽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벽을 세우다 보면 나조차도 때로는 이율배반적이었다.


견고해 보이는 나의 질서는 언제나 사소한 균열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말했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라고. 완벽이라는 나의 신념도 결국 나를 가장 쉽게 부서뜨리는 적이었다. 그렇다면 무너짐을 견디는 힘은 어디에서 와야 하는 걸까. 통제를 놓아 버리는 순간일까, 아니면 무너짐을 껴안는 용기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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