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락에서 진행하는 모각글 시즌 5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몇 년 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연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네가 사랑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남기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최유수의 『사랑의 몽타주』였다. 사랑의 흥망성쇠를 다룬 그 책에는 그 사람의 필체로 빼곡한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우리가 예열 상태일 때, 뜨거웠을 때,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그리고 시들어 가던 때. 그는 끝 무렵의 귀퉁이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버텼고, 그것은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은 곧잘 나오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I love you', 'Ich liebe dich'는 가볍게 흘러나오지만, ‘사랑해’라는 말에는 언제나 주저함이 따랐다. 나는 내가 정의한 사랑에 도달하지 못해, 늘 좋아하는 상태에 머물렀다.
한동안 책장 구석에 꽂혀 있던 그 책을 어느 날 문득 꺼내 들었다. 단숨에 읽고 나서야, 아주 조금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태생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에 회의적이었던 나는, 결국 그것마저도 글로 배웠다. 이 책은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되새겨주는 일종의 ‘바이블’ 같은 존재가 되었다.
딱히 좋아하는 작가도, 또렷이 떠오르는 문장도 없었기에, 오늘의 글감을 오래도록 곱씹다 문득 목구멍 너머로 울컥 쏟아지는 건 결국 이 책이었다.
종교는 사랑이라고 외치는 작가는 말했다.
‘사랑이 내게 남기는 흔적들을 뒤적거렸다. 하나의 흔적은 여러 조각으로 나뒹굴었다. 주워서 맞춰 봐도 흔적의 원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글로 옮겨 적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정체는 정확하게 정의될 수 없다. 다만 언어를 조립하여 그것의 그림자를 표현할 수는 있다. 나는 이를 몽타주로 부르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 안의 흔적들을 뒤적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각각의 몽타주는 각자의 몫이다. 모든 몽타주를 수집해 다시 조합할 때, 사랑의 정체에 대한 3차원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바닥을 매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깊게, 더 깊게 자아의 우물을 파낸다. 그 안에 불안이 차오른다. 들여다본다. 들여다보게 한다. 그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서로의 불완전성이 긴밀하게 공유될 때, 우리는 끝 모르고 깊어진다.’
연인을 앞에 두고 “네가 정의하는 사랑과 내 것은 달라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어”라고 말하던 내가, 훨씬 나중에 우리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었다.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어.”
...
『사랑의 몽타주』 중에서:
사랑에는 온도가 없다
‘사랑이 식었다’라는 말은 ‘감정이 식었다’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사랑에는 뜨겁다, 차갑다, 미지근하다와 같은 형용사를 붙일 수 없다. 불타오르는 것은 감정이고 차갑게 식는 것도 감정이다. 감정은 가변적이고 수시로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반면 사랑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식는 것은 사랑이 아닌 감정이었다. 감정이 식었다는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역사
누군가와 헤어지더라도 그 사랑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는다. 이별 후 점차 그 시간을 잊게 된다 하더라도, 바래지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사랑은 지나온 시간 속에 머물러있다. 사랑은 매 순간 시간의 뜨개질에 의해 오밀조밀 꿰어지고, 이별이라는 매듭을 짓는 순간부터 한 벌의 낡은 스웨터가 되어 남겨진다. 시간과 뒤엉킨 채 기억의 저편에 저장된다. 우리 힘으로는 그 매듭을 풀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바래져만 갈 뿐이다. 지난 사랑을 증거하는 사진과 기록들을 들추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아련한 단절감은, 바로 그 매듭 때문이 아닐까.
어떤 존재가 기억에서 잊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 속에 꿰어진 역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역사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우리에게 흡수되어 우리를 성장시키고, 다음 사랑에서 반드시 발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같은 성장을 겪어왔을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과거의 그림자가 되어 우리를 따라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랑을 비추는 빛이 되어 서로를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잠든
너의 얼굴 위로 새근거리는 구름이 맴돈다. 목 언저리에서 나는 한 줌의 숨결을 가로챈다. 물에서 뭍으로 나온 듯 내 숨은 길게 늘어진다.
닫힌 너의 눈꺼풀 너머를 상상한다. 현악기처럼 가지런한 너의 속눈썹을 더듬어 선율을 그린다. 나의 코끝을 너의 코끝에 스친다. 너의 오목한 인중에서 그네를 타는 여자아이를 떠올린다.
마지막으로 너의 입술에 새겨진 주름을 헤아리는 사이 너의 눈이 열린다. 나를 향해 초점을 맞추는 몽롱한 눈빛에서 나는 사랑을 마주한다.
이 순간을 통째로 사로잡아 내 손목에 질끈 묶어두고 싶었다.
사랑의 심지
시간은 우주를 바깥으로 팽창하게 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랑을 그 사람의 내면으로 깊어지게 한다. 블랙홀 안에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하나의 구심점으로 스며들고 그 안에서 사랑은 깊숙이 펼쳐진다. 시간이라는 동력은 무섭도록 공평하고 균일하게 팽창의 속도를 유지한다.
그 안에서도 풍화가 진행된다. 시간은 메마른 바람과도 같아서, 물기 가득한 사랑의 첫 번째 채색을 서서히 건조시킨다. 범인은 늘 시간이었다. 선명하고 강렬한 채색은 그것이 첫 번째 채색일 때만 가능했다.
메마른 바람이 스쳐간 자리에는 곧 텅 빈 색깔이 칠해진다. 그것이 반복되고 공백 위에 공백이 덧칠되면서 우리 마음의 눈꺼풀 위에는 녹지 않는 눈처럼 어떤 힘이 소복이 쌓여간다. …
낡아진다는 것
다가올 모든 순간은 새롭고, 새로운 것은 반드시 낡아진다
낡아진다는 것은 최초의 빛나는 순간을 대하는 나의 낯설음이 서서히 익숙함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떤 대상이 심리적 안정권의 선을 넘어오는 순간부터 진행된다. 모든 것은 낡아지고 낡아지는 모든 것은 맹점에 속해서 우리가 알아챌 수 없게 만든다. 어느덧, 그리고 별안간, 익숙한 것이 되어 있다.
ㅅ ㅏ ㄹ ㅏ ㅇ
사랑이라는 단어를 적어놓고 멍하니 한참 들여다봤다. 고개를 꺾어서 보고, 자모음을 뜯어서도 보고, 다른 모양으로 적어도 보고 하다가, 단어의 속내를 감싸고 있던 틀이 무너졌다. 예쁘게 생겨먹어서 왜 그리 사람들을 평생 고심하게 만드는 건지.
잘게 쪼개어, 여러 번 더디게 발음해 본다.
사랑.
사-랑.
사-라-ㅇ.
ㅅ-ㅏ-ㄹ-ㅏ-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