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어회

유락에서 진행하는 모각글 시즌 5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by 수빈

내 고향 부산에는 계절을 회로 느낀다는 말이 있다. 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제철 회를 기다리며 일 년을 보낸다. 봄엔 도다리, 여름엔 밀치, 가을엔 전어, 겨울엔 방어. 그런 흐름과는 별개로, 내가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가족 단톡방에 가장 먼저 외치는 음식이 있다. 바로 향어회다.


향어는 민물고기로, 바다 생선과는 맛도 질감도 다르다. 광어나 우럭처럼 특별한 맛이 없는 생선은 초장이나 간장을 곁들여야 제맛이 나지만, 향어는 그 자체로 은은하게 달콤하고 쫄깃하다. 오독오독한 식감이 살아있고, 마치 씹는 꽃잎 같다.


서울에서 회를 먹으면 세팅은 번지르르하지만, 정작 양은 적고 어딘가 딱 떨어진 느낌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상품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반면 향어회는 수북하게 쌓여 나오는 그 한 접시에서부터 이미 정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마음이 음식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느낌이다. 손이 먼저 가고, 마음이 따라가는 음식이다. 초장에 풍덩 찍어 한입에 넣으면, 마신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부드럽게 넘어간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초장에 들어가는 산초 향이다. 특유의 싸한 향이 입 안을 감돌면서 향어 특유의 풍미를 살린다. 함께 나오는 매운탕에도 산초가 들어가는데, 그 국물 맛은 말 그대로 감칠맛의 정점이다. 향어회에 파, 마늘, 참기름, 산초 초장을 더해 비벼 먹으면 다른 회는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향어회를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아빠 덕분이다. 마산 출신인 아빠는 어릴 적부터 마산역 근처 향어 횟집 단골이었고, 가족과 떨어져 지낼 때도 종종 그 집에서 포장해 오셨다. 나와 아빠는 듣는 음악도, 좋아하는 영화도, 살아가는 방식도 꽤 다르지만, 향어회 하나만큼은 유일하게 공유하는 취향이었다.


나에겐 아빠가 내려오던 날과 향어회가 거의 같은 의미로 남아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 놓인 투명한 회 포장을 보면, 아빠가 왔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향어회를 떠올리면 단지 맛뿐만 아니라 어떤 시간, 냄새, 분위기까지 같이 떠오른다.


이 향어회를 파는 곳은 마산에 있는 '키다리횟집'이다. 예전에는 간판도 낡고 내부도 오래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정돈되고 밝아졌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향어 하나만큼은 여전하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그 맛을,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찾는다. 향어회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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