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서문
이처럼 “공룡”이라는 단어는 꽤 가성비 있는 “낚시성 링크”여서 솔직히 나 또한 이 책에 (커다란 글씨로) “공룡”, (작은 글씨로) “그리고 그들이 인간의 진화와 멸종에 미친 영향”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리하여 드디어 공룡과 인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왔다. 동일한 논리를 현생 인류에 적용하면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이미 멸종 직전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규칙은 있다. 헬싱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 종의 필연적인 종말은 약 700만 년 동안 이어진 인간 계보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종만 남게 된 순간에 시작되었다. 그 종이 호모 사피엔스였다. … 그후에는 멈출 수 없는 하향 곡선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단 한 가지, 최후의 막은 언제 내려질 것인가이다.
기번이 로마의 쇠망을 제국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도달했을 때부터 계산한 것처럼, 나도 인간이라는 종의 쇠퇴를 호모 사피엔스가 호미닌hominin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정상에 오르기 직전부터 기록할 생각이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지구에 인간의 수가 많지만, 과거에 겪은 희소성은 우리 유전자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겉으로 보이는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실상 굉장히 동일한 존재이다. 전체 인간 종을 놓고 보더라도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사는 침팬지 한 무리의 유전자 변이가 더 크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과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멸종을 가까스로 피한 극소수의 창시자 집단으로부터 확산되었다는 증거이다.
진짜로 염려할 일은 현재 대부분의 인간이 극히 제한된 가짓수의, 그것도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작물을 먹고산다는 점이다. 단일 작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 수순이다.
바나나처럼 현생 인류 역시 침팬지하고만 비교해보더라도 유난히 병에 잘 걸린다. 이런 취약성의 뿌리는 인구가 극히 적은 수로 감소했다가 다시 회복하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현저하게 낮아진 불안한 과거에 있다.
물론 인간이 짊어진 질병의 무게가 근대 의학의 개입으로 인해서 더 무거워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좀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잔뜩 살아남는 바람에 말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인공 광합성과 기타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이 우주를 개척한다면, 현재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고 심지어 이 종의 멸종 기한을 늦출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진화의 무자비한 톱니바퀴가 다양한 포스트휴먼 종을 만들어낼 때까지 말이다.
제1부 부상
그러므로 왜 호미닌이 이족보행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기보다는 어쩌다가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진화의 막다른 길에 몰렸냐고 묻는 것이 옳다.
1) 나무가 희소해진 세상에서의 삶, 2)유인원 선조 덕분에 처음부터 꼬리라는 균형추가 없는 상태, 3) 원숭이보다 커진 몸집. 이 조합 아래에서 호미닌은 뒷다리로 일어나서 걷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종의 형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지만, 섬 생활은 그 주민들을 유독 특이하게 변화시킨다. 특히 작은 생물은 몸집이 커지고, 큰 생물은 몸집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분명히 강조하는데, 우리가 알게 된 다양한 인간도 사실은 실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드물었고 후대가 생산되는 과정은 늘 변수에 좌우되었다.
그러나 우성이 아닌 열성으로 유전되는 질환이라면 도태 과정이 아주 오래 걸린다. 여기에 동반되는 개인의 고통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개체군이 가까스로 멸종을 모면했다고 하더라도 남은 집단은 치명적인 질병을 피했을 뿐 개체끼리는 유전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진다.
그런 기술로 허락되는 개체 수는 적었다. 그들은 언제든 영원히 지워질 수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불어나면서 연속성의 가능성이 열렸는데, 이는 한 세대의 발명과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전승되어 매번 처음부터 새로 발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뉴턴은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비유에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답은 집단의 크기에 있다. 개체 수가 너무 적고 그나마도 희박하게 흩어져 있어서 기술이 지속되지 못하고 증발한 것이다.
로빈 데넬이 지적한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는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곳까지 대담하게 전진하는 독보적인 침입종이다.
핵심은 집단의 크기에 있다. 현생 인류가 조금 더 밀집된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멀리 떨어진 무리끼리도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늦어도 4만 년 전에 이미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남은 최후의 호미닌이 되었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이들은 다른 모든 호미닌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로 확산했다.
제2부 쇠락
개와 인간은 모두 사회성이 발달한 육식 동물이자 청소동물이며, 서로 비슷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사람과 개의 무리가 일찌감치 한 팀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니다.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인간이 저 많은 야생생물의 극히 일부밖에 길들이지 못한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모든 생물이 기본적으로 인위적인 가축화에 저항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퍼지는 질병은 인간이 비좁고 북적거리는 장기 주거지에서 닭이나 돼지 같은 가축과 함께 살면서 발명하기 시작했다. … 결핵(소의 질병), 흑사병(쥐에게서 벼룩을 통해 확산), 독감(가금류의 질병) 등이 모두 농경의 산물이다.
어른을 포함한 인간이 우유를 소화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농업이 인간에게 단순히 영양실조와 질병 이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농경으로 인해 인간은 진화했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 질병으로 받는 피해는 정도가 유독 지나친 것 같다. 이렇듯 우리를 질병에 특별히 더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으니, 바로 인간의 유전적 균질성이다.
숙주와 질병은 대개 어느 선에서 합의에 도달한다. 감염의 치사율이 떨어지면서 병에 걸린 사람은 호되게 앓더라도 죽지 않고 회복한다(단, 그 전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
한 종으로서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감염병과 기생충이 난무하는 엉망진창인 세상을 감내하며 살았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던 창시자 효과로 유전적 변이가 크게 부족해진 결과이다.
동시에 인간은 간신히 남아 있는 야생의 서식지마저 잠식하여 야생의 동물들만 걸리던 새로운 질병에 인류를 노출시키고 있다. 감염성 질병은 바로 이런 조건에서 번성한다.
머리와 동료들이 말한 것처럼 인구 감소의 한 가지 결과는 경제를 이끌어갈 혁신가 집단의 감소이다. 다시 말한다.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다윈이나 파스퇴르, 게이츠나 잡스, 베이조스나 머스트,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낳으려면 1억, 심지어 10억 인구의 문명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다.
인구의 크기가 정점에 오르면 확보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진다. 이는 경제의 건강을 GDP, 즉 소비와 관련된 경제적인 건강과 동일한 척도에서 보고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심지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습도가 100퍼센트인 상태에서는 섭씨 35도 이상의 더위에 6시간 이상 노출되면 건장하고 건강한 사람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의 세 번째 대이동을 앞두고 있다. 점차 열악해지는 기후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북쪽으로 향할 것이다. 어떤 법도, 지중해나 북해를 순찰하는 어떤 경비정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인간의 출생률 감소에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적인 인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식지를 무작위로 선정해서 파괴한 결과는 놀랍게도 우점 경쟁자가 점유한 구역을 정확하게 선별해서 파괴했을 때의 결과와 동일하다.” … 이 논문은 우리 종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마무리된다.
서식지 파괴가 멸종을 야기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연구의 결과는 서식지 파괴가 최고 경쟁 종의 선택적 멸종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종은 보통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생물이자 생태계 기능을 조절하는 주요 통제자이다.
작고한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웁이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출현했던 생물종의 99퍼센트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대강 따졌을 때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제3부 탈출
인구증가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시점이 마침 녹색 혁명의 영향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였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다가오는 인구 감소가 지구를 구해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녹색 혁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기대 수명 증가, 가족 규모 감소, 그리고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는 탄탄한 증거가 있다. 좋은 소식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진화의 속성에 있다. 진화는 생물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필요 없이 그저 한 세대가 번식하여 다음 세대를 생산할 때까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시킨다. 따라서 진화 과정에서 광합성의 다양한 결함이 그때그때 단편적으로 수정되었고, 그러면서 일부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 진화는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씩 손을 보는 과정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야생이라고 하는 것도 이미 인간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왔고 그 자체로 다분히 인공적이다.
주
적혈구는 예외이다(적어도 포유류에서는). 만약 당신의 적혈구에 핵이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