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말
너무 늦었다. 이 책은 적어도 20년 전에 번역이 되었어야 했다.
누구의 손바닥에 싯구절이 남느냐에 따라 시인의 삶이 마름질되듯 학자의 삶도 훌륭한 저서와 논문으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윌슨은,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 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전개되어 있는 윌슨의 논리는 그가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말을 새롭게 표현한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라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숨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살다 죽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생명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생명체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을 보낸 다음 어김없이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그에 비하면 태초에서 지금까지 면면이 명맥을 유지해 온 DNA야 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이다.
유전자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일한 유전자가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유전자가 표현되는 과정이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복제 인간은 출산 시간이 많이 늦어진 쌍둥이에 불과하다.
사회 생물학자들은 결코 생명체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생명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유전자의 존재 이유에 어긋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전시 서문
그래도 나는 이 책을 검증된 과학의 성과물로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내가 내린 어떤 결론이나, 자연 과학의 역할에 대해 원대한 희망을 품은 것이나, 과학적 유물론을 지나치게 확신한다는 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런 전제를 두는 것은 겸손한 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직업의 힘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1장 인간 중심의 딜레마
나는 인간의 정신이 이런 근원적인 한계에 갇혀 있고 전적으로 생물학적 기구를 이용하여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뇌가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면, 어떤 특정한 심미적 판단과 종교 신앙을 선택하는 능력도 그와 동일한 기계론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야만 한다. 그런 능력은 인간의 조상들이 진화를 거쳐 왔던 당시의 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적응의 산물이거나, 더욱 엄격한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과거에 적응을 거쳤던 더 심층적이면서 덜 가시적인 활동에 딸려 있는 부속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첫 번째 딜레마는 한마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해진 곳이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종은 자신의 생물학적 본성 외에 그 어떠한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프랑스 정치가인 알랭 페르피트는 마오쩌둥을 두고 “중국인들은 그의 안에 있는 자신들을 사랑하는 나르시스적 기쁨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들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당연하다.”라고 찬양한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드러나지 않은 주인인 유전자에게 복종하고, 고차원적인 충동은 더 세밀히 탐구할수록 생물학적 활동으로 변모하는 듯하다.
두 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적 관점이 결핍된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윤리 규범을 기원이 아니라 결과에 비추어 연구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 과학을 사회 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을 자연 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어떤 이데올로기적 혹은 형식주의적 지름길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자연 과학인 신경 생물학을 힌두교 정신적 지도자의 발치에 앉아 배울 수는 없으며, 유전적 역사의 결과물을 놓고 의회에서 투표로 선택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육체적 행복을 위해서라도, 도덕 철학을 현인들의 손에 그냥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설령 인류의 진보가 직관이나 의지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도, 서로 경합하는 진보의 기준들 중에 최적의 것을 선택하는 일은 힘들게 얻은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경험 지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니, 거기에서 우리는 몽매주의(dbscrantism)를 발견한다. 그리고 마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관한 희한한 과소평가를 발견하게 된다. 감각적 빛깔과 그늘진 색조는 우리 신경과 감각 조직이 유전적 진화를 겪으면서 형성한 것이다. 그들이 생물학적 탐구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된다.
과학적 방법의 핵심은 인식된 현상을 근본적이고 검증 가능한 원리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과학적 일반화가 지닌 우아함은 그것이 많은 현상들을 얼마나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그러나 최초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반배수성 획득은 아주 우연히 이 곤충들에게 고도의 사회생활이 발달할 수 있는 성향을 제공한 진화적 사건이었다.
이제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고 있기에 인간 연구의 진정한 대상은 인간이어야 한다.
2장 유전적 진화
박물학자인 하워드 에반스(Howard Evans)가 자신의 책 제목에 썼듯이, 생물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행성에 사는” 생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 토대 위에 있다는 가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이 근연 관계에 있는 종들과 공유하고 있는 일부 유전자와 인간 종 고유의 유전자로 조직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다윈이 자연 선택이라고 부른 이 과정은 인과 관계의 꽉 짜인 순환을 의미한다.
그것은 실제로 나타난다. 조사한 종 가운데 사슴과 인간은 임신한 암컷에게 불리한 환경 조건이 형성될 때, 딸의 출산율이 높아지는 결과를 보였다.
3장 준비된 학습
따라서 인간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으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채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율적인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한 개인의 의사 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폭넓게 겹치게 하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도 좋을 강력한 수렴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치밀하다.
4장 문화적 진화
그러나 인간의 그런 지식과 영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벌 자신의 ‘마음’ 속에서, 벌은 언제까지라도 자유 의지를 가질 것이다.
이런 수학적 비결정성과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어떠한 신경계도 다른 지능 체계의 미래를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상세히 예측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 자연법칙일지 모른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운명을 포착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유 의지를 제거할 수 있을 만큼, 자신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는 지적 정신이란 없다.
정신은 매우 복잡한 구조이며, 인간의 다양한 사회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정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는 개인이나 인간이 어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역사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결과적으로 당신과 나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사람이다.
당분간 현대 사회들의 능력 차이를 유전적 차이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겠지만, 이 점은 지적해 두고 싶다. 한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한계는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현대의 사회 현실에 더 가까우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생물학적 진화가 문화적 진화를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기기 시작할 것이라고.
5장 공격성
인간의 공격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구조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호 작용 패턴이라는 관점은 진화론과 부합된다.
6장 성
그렇지만 이 가변성이 무한한 것은 아니며, 그 밑바탕에는 진화론의 예측들에 거의 들어맞는 일반적인 특징들이 모두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성적 상대의 교체가 대부분 남성 주도로 이루어지는 온건한 일부다처제형이다.
그래서 매춘부를 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가계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낳은 아이는 사람들에게 이방인이 된다.
7장 이타주의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3세기의 신학자 테르툴리안은 이 냉혹한 격언을 통해 희생의 목적이 한 인간 집단을 다른 집단 위에 놓는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인간의 이타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결함을 인정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개인의 자존심과 긍지가 중요한 요소가 되며, 전투의 순수한 흥분 상태는 그것이 없었다면 망설였을지 모를 상황에서 종종 사람을 기꺼이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하면, 너의 궁극적인 소멸이 저기 단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너를 돌아보고 있는 순간에 너에게 마지막 몇 걸음을 계속 걷도록 하는, 일종의 국가적 사회적 심지어 인종적인 — 열렬한 기쁨, 거의 성적 쾌락의 쇄도와 같은 종류의 — 매저키즘이 있을지 모른다. 더 이상 그 어느 것도 개의치 않는 궁극적인 쾌락이.
그렇다면 이타주의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사회성 곤충이라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혈연 선택은 자연 선택의 한 부분이다.
인간 이타주의의 진화론은 이타주의의 유형들이 대부분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진다. 지속성을 지니고 있는 유형의 인간 이타주의 중에서 철저하게 자기 파멸적인 것은 없다.
상어에게는 자연 선택이 개체 수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즉 상어의 모든 행동은 자기 중심적이고, 절묘할 만큼 자기 자신과 직계 자손의 복지에 적합하다. 대집단을 이루면서 고도의 협동성을 보이는 고깔해파리는 자연 선택이 거의 전적으로 군체 수준에서 작용한다. 각 개체, 즉 젤라틴 덩어리로 압축되고 환원되는 해파리 하나하나는 중요하지 않다. 군체의 어떤 개체들은 위가 없고, 어떤 개체들은 신경계가 없다. 또 대부분 생식 능력이 없다. 거의 모든 개체들은 떨어져 나가거나 재생될 수 있다.
한 개인이 지닌 민족 정체성의 강도와 범위는 그가 속한 사회 경제적 계층의 일반 이익에 따라 결정되고, 그것들은 먼저 그 자신, 그리고 그의 계층, 마지막으로 그의 민족 집단의 이익에 봉사한다. 정치학에는 ‘디렉터의 법칙(Director’s law)’이라고 알려진 수렴 원리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이타주의가 가장 맹목적인 형태로 표출되리라고 직감할 수 있는 종류의 강력한 감정적 통제 장치에 의해 빚어진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도덕적 공격성은 보답의 강화 측면에서 가장 격렬하게 표출된다.
그런 일반화 중 하나는 이렇다. 즉 내(內)집단은 더 가난해질수록 일종의 보상 작용으로 집단적 자기도취를 더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인은 인간 이타주의의 비대화라기보다는 골화(骨化)이다. 그것은 초월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생물학적 명령에 기꺼이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뇌는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행동은 — 그것을 추진하고 인도하는 가장 깊은 감정적 반응 능력처럼 — 인간의 유전 물질이 자신을 고스란히 보존해 오고 앞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쓰는 우회적인 방법이다. 이것 말고 도덕은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궁극적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8장 종교
종교 신앙을 갖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자, 아마 인간 본성 중에서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신은 도처에 연송되어 존재한다. 신은 원자로부터 분자가, 분자로부터 생물이, 물질로부터 정신이 출현하도록 암암리에 인도한다. 전자의 특성은 그것의 최종 산물인 정신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어떠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과정은 현실이고, 현실은 과정이며, 신의 손은 과학 법칙들 속에 내재한다.
왜냐하면 종교란 무엇보다도 개인이 자신의 직접적인 사리사욕을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키도록 설득당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유물론의 이야기 형태는 서사시다. 즉 그것은 150억 년 전의 대폭발에서 출발해 원소와 천체의 탄생을 거쳐 지구의 생명이 출현하기까지의 진화이다. 그 진화 서사시는, 그것이 지금 당장 제시할 수 있는 법칙들은 믿을 만한 것이지만, 물리학에서 사회 과학까지, 이 세계로부터 가시 우주의 다른 모든 세계까지,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 우주의 탄생 시점까지, 그 모든 것이 인과의 사슬로 엮여 있다는 점을 결코 명쾌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화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생물학사의 중요 단계, 즉 종교 자체가 자연 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다.
9장 희망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 정신은 인간에게 자연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