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할 땐 리더가 필요 없다

제2장: 지피지기

by 고병수

부대가 안정적이고 평온한 상황에서는 사실 지휘관의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아무 일 없도록 안정적으로 부대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지휘관의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대가 지휘관을 간절히 원할 때는 언제일까? 부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다. 문제가 생겼을 때야말로 내가 필요한 순간인데, 정작 그때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내가 처음 장교로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소대장으로 부임했는데, 소대원들과 중대의 간부들이 나에게 깍듯이 대해주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간부도 많았다. 나는 왜 그들이 나에게 존댓말을 써주고 경례를 붙여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당연히 나라는 사람 개인이 훌륭해서는 아니었다. 나에 대한 존경과 예우는 나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부대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불평불만이나 하고 다른 사람 핑계만 대고 있다면 ‘좋은’동료로 여겨질 수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요 에피소드에서 스피어스 중위는 위기에 처했을 때 장교가 할 일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바스토뉴 전투에서 이지 중대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중대장이었던 다이크 중위는 전투 준비 과정에서 부대를 자주 비우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이지 중대는 경험 많은 부사관들과 병사들의 헌신으로 유지되며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다이크 중위는 준비되지 않은 전투상황 속에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어 독일군의 공격이 퍼붓는 상황에서 중대원 일부가 고립되는 등 위기에 빠졌다. 중대 대형이 독일군에 의해 이분되었고 중대원들은 어서 명령을 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다이크 중위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때 대대에서는 스피어스 중위를 중대장으로 긴급 투입하여 다이크 중위를 대신하게 했다. 그길로 스피어스 중위는 전장으로 달려가 빠르고 단호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중대에 임무를 하달했다. 특히 그는 적진 사이에 고립된 부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직접 독일군 진영을 가로질러 달려가 고립된 부대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중대를 지휘하기 위해 적진을 다시 가로질러 돌아오는 장면은 전체 드라마를 통틀어 명장면에 꼽히는 하이라이트다.


손자병법에서는 지휘관이 부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잘못된 자질을 지닌 지휘관이 부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부대를 위태롭게 하는 장수의 자질 다섯 가지를 언급했는데, 창업 초기 기업은 물론이고 어느 형태의 조직에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준으로 삼을 만하다.


첫째, 죽기를 각오함이 지나쳐 적에게 쉽게 희생될 수 있는 무모하고 경솔한 자질이다.

군인이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상황을 판단해 부대가 싸울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 전쟁은 자존심이나 공명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팀원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조직 전체의 방향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이순신은 언제 어떻게 싸우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도 이를 거부하여 백의종군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순신이 죽기를 각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둘째, 살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적에게 쉽게 잡힐 수 있는 겁이 많은 자질이다.

이순신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전투 의지를 고취 시켰다. 분노를 못 이겨 죽을 자리에 부대를 이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겁에 질려 부대를 지휘하는 것 모두 감정의 중용을 유지하지 못한 하수들의 지휘 방식이다. 지피지기하여 지금 나의 마음과 감정이 어떤지 알아야 한다.


셋째, 쉽게 화내고 성급하여 수모를 당할 수 있는 자질이다.

손자는 상대가 화를 내거나 나를 깔본다면 이를 더욱더 부추기라고 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상대가 나를 화가 나게 하거나 우쭐하게 만들더라도 넘어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상대에게 화가 나거나 상대를 깔보고 있다면 이미 상대의 손바닥에 올려져 유심히 관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관리도 안되어 감정을 앞세워 지휘하는 자는 팀원들에게 피해만을 강요할 뿐이다.


넷째, 절개와 고귀함이 지나쳐 자기 고집만을 부리는 융통성이 없는 자질이다.

본인의 명예와 자존감만이 지상목표인 사람은 팀의 생사를 짊어질 수 없다. 본인의 평판이 누더기가 되거나, 때로는 거래처에서 모욕을 당하더라도 팀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환영할 일이다. 고고한 삶을 추구한다면 종교인이 되어 자기 수행만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다섯째, 부하에 대해 지나치게 연민하고 집착하여 부대를 괴롭게 하는 자질이다.

인정에 연연하여 객관적이지 못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장수의 부하에 대한 사랑은 오직 그들을 승리로 이끌어 목숨을 보전시키고 고향으로 돌려보낼 때 더욱 증명된다. 프로답지 못한 모습은 팀원들을 오랜 고통에서 고생시킬 뿐이다. 이러한 장수는 부하를 아낀다는 핑계를 대며 현실을 도피하려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팀 내에서 싫은 소리하는 사람이 되어 악역을 자처해야 할 때도 있다. 진정 자애로운 지휘통솔은 부대 전체가 이롭도록 구현된다.


앞 사례의 다이크 중위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겁을 냄으로써 부대를 위험에 빠뜨린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윈터스는 위 전투 당시 대대의 부대대장이었다. 부대대장을 수행하기 전까지는 이지 중대에서 중대장을 하며 부대원들과 많은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이지 중대에 특히 애정이 많았다. 그래서 다이크 중위가 중대를 위험에 처하게 하자 윈터스는 직접 나서서 중대를 지휘하려고 할 만큼 격정에 휩싸였었다. 그러나 윈터스는 부대대장으로서 대대의 다른 중대들까지 함께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주변의 만류를 받아들여 급히 스피어스를 중대장으로 투입 시킨 것이었다. 윈터스의 태도 역시 다섯째 자질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손자가 지적했듯, 이러한 자질은 나와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나를 돌아보며 창업자이자 동료로서 우리는 죽을 각오로 임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두려움을 극복하되 지나치게 조심스럽지 않아야 한다. 정직하되 고집에 사로잡히지 말고, 팀원을 사랑하면서 그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인적 결함을 개선하는 것은 어떤 결함이 있는지 아는 것부터다. 평온하고 안전할 때는 누구나가 나이스 가이다. 진짜 모습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결국 우리는 평온한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야 한다. 이는 평상시 부단한 훈련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의 중요함을 몇 번 강조하든 지나치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가장 위대한 행운, 이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