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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mee June Youn Mar 21. 2020

1-8. 영화 <윤희에게>

200122, 15시, 종로 인디스페이스

 <한강에게>와 <윤희에게>를 고민하다 전자를 본 나로서는 매우 보고 싶은 영화였다. 전자가 너무 별로였기 때문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나는 그 뒤에 영화 평론가의 강연에서 이 영화를 추천받았고, <메기>처럼 거의 독립영화관에서도 내릴 때쯤에야 겨우 관람하게 되었다.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감상문을 쓰고 있기에 감상이 흐릿하긴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고 곧바로 '좋은 영화였다, 한 번 볼 만한 영화다'라고 추천했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시놉시스를 보고 '첫 사랑에 대한 영화겠거니'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보고 나서는 그렇게 이 영화를 정의내리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고 나서는 이 영화는 아마 '페미니즘' 혹은 '여성'이란 말로 정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정의되는 것 역시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가 그 영화에 요구되는 장르적인 특성을 만족시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왔다. 이를테면 <오션스 일레븐> 같은 영화는 멋진 캐릭터들, 화려한 액션과 트릭, 박진감 같은 것들을 충족시키면 되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같은 영화는 각 캐릭터들의 개연성, 감동적인 사랑, 따뜻한 정서 같은 것들이 받쳐주면 좋은 영화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한 장르로 묶기 힘든 영화도 분명히 있다. 그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경계에 걸쳐있는 영화들은 하나의 장르에 충실한 영화들이 주기 힘든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난 작품의 복합적인 속성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기에 좋은 영화도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윤희에게>는 한 마디로 평하기 어려운 그런 영화였다. 추천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영화.


 우선 시작이 뻔하지 않았다. 포스터 속 펼쳐진 설원과 아련한 감성이 담긴 김희애 배우님의 옆 얼굴, 첫사랑을 찾아가는 내용의 시놉시스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전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영화를 제대로 못 담아낸 홍보였나 싶기도 하다. 홍보물에서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것을 찾기는 어려웠다.


 윤희와 편지의 발신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은 채, 내용 모를 편지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의 결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칫 변죽만 두드리는 느낌을 주거나 답답하고 지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특유의 섬세함으로 윤희와 편지의 발신인, 윤희의 딸 세 사람의 시선을 계속 교차하며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끌어나간다.


 편지의 내용 및 두 사람의 일이 나중에야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들의 정서와 행동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남편과 이혼한 뒤 딸을 키우며 천편일률적인 생활을 버티고 있는 윤희, 부모가 갈라서면서 조금 먼저 외로움과 눈치, 행동력을 배운 딸, 눈이 많이 쌓이는 지방에서 조금 외롭지만 따뜻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편지의 발신인. 세 사람의 일상에 편지가 하나 들어오면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일상 속 틈이 생겨난다. 그 사이에 윤희의 남편, 발신인의 할머니, 딸의 남자친구 등 주변인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겹쳐지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 속 윤희의 마음에는 점차 변화가 생기고, 결국 윤희는 발신인을 찾으러 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다른 대단한 원인이 아니라 사소한 행동 몇 가지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긴다는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인생이 그렇다. 의도한 대로 항상 되지도, 그렇다고 예상 못하게만 흘러가지도 않는다. 하나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기후를 바꿀 수도 있는 게 이 세상이다. 개연성이 없지도, 우연적이기만 하지도 않은 전개였다.

 

 나비의 날갯짓만큼이나 섬세한 감정의 결을 타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영화였기 때문에, 인물들 주변 요소들은 미니멀한 느낌이 있었다. 음악이 대부분 잔잔했고, 꼭 필요할 때만 깔리곤 했다. 장면들도 차분한 색조로 일관도게 흘러갔다. 특히 영화 중반 이후로는 거의 한 지역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기에 하얀 눈이 프레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들이 계속 펼쳐졌다. 애니메이션으로 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의 배경 같은 느낌이랄까. 톤 자체가 일관되고 과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느낌이라 참 좋았다.


 마지막 장면까지 딱 보고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참 깔끔한 영화였다.' 말 그대로다. 군더더기가 정말 없는 영화였다. 다양한 장식을 얹어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케이크가 있는가 하면, 최대한 꾸미지 않고 들어갈 것만 들어간 식빵도 있는 법이다. 이 영화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배경음악, 장면의 색조,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모두 하나의 톤으로 수렴하는 느낌이었다. 웃음이나 슬픔을 유발하는 장면까지도 그 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더해졌다. 첫 사랑을 만난 윤희는 그 기억을 딛고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데, 그마저도 너무 감동적이지도 걱정스럽지도 않게, 그러나 적당히 희망적으로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영화 구성 요소들과 결말도 깔끔했지만, 나는 감히 맨 마지막 대사가 이 영화의 진정한 마침표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그 대사를 듣기 위해 영화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네 꿈을 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지금의 윤희에게, 윤희와 편지의 발신인 사이에 있었던 기억과 더불어 지금의 그가 어떤 의미인지를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매우 담담하고 정제된 언어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담백함은 영화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보통 영화 속에서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면, 만나게 되는 것 자체가 결말이 아닌 이상 그 감동적인 재회를 절절하게 프레임에 담을 것이다. 그렇지만 윤희와 발신인은 짐짓 쿨하지만 간절하게, 내키지만 내키지 않게, 어쩌면 우연적으로, 그러나 필연적인 상황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를 바로 알아보고, 같은 곳으로 말없이 걷는다. 영화 끝부분에 이르러 겨우 만난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서술은 이게 전부다. 누구나 알 것이다. 너무도 바라고 꿈꾸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다가올 때, 정말 카메라에 담고 싶은 뭔가를 맞닥뜨렸을 때, 포착을 포기하게 되는 마음을. 어떤 도구로도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관객은 덤덤하게 지나간 만남 이전과 이후의 두 사람의 삶에 다시금 더 주목하게 된다. 어쨌든 두 사람에게 서로를 마주했던 하룻밤이 인생의 또다른 분기점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멀지만 잊을 수 없는 어느 과거 속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인생을 뒤흔들어 놨던 것처럼. 그들은 예기치 못한 두오모에서 다시 만났지만, 그 뒤로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윤희는 자신의 옛사랑과 사랑했던 자기 자신을 모두 외면하지 않게 되었으며, 관객들은 그 사실이 앞으로 윤희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너의 꿈을 꾸니까.



*<윤희에게>는 분명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영화이며, 페미니즘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세상의 편견 때문에 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좋았던 것은 세상의 편견이 그릇된 것임을 은연중에 보이면서도, 그들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뿐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부각되지 않는 지점이었다. <위켄즈>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나는 작품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다룰 때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성소수자'라는 것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가 하나의 분류 코드인 것처럼, 성소수자냐 아니냐도 단지 성적 지향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들의 삶을 다룬' <위켄즈>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지만, 나와서는 오히려 '괜찮은 노래 동아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궁금해졌다. <윤희에게>에서도 그 둘의 사랑은 그 둘의 삶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획득할 뿐, 그들의 사랑은 다른 연인들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게 그려진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특이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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